'제주의 아들' 프로골퍼 강성훈 세계무대서 '굿샷'
'제주의 아들' 프로골퍼 강성훈 세계무대서 '굿샷'
  • 정용기 기자
  • 승인 2019.12.08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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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주인 15. 프로골퍼 강성훈
지난 5월
강성훈이 지난 5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트리니티 포리스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 대회에서 우승하며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지도를 펼치면 제주도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제주의 아들’ 강성훈(32)은 어려서부터 제주도의 힘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제주인으로서 자긍심도 잃지 않았다. 강성훈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스스로 골프채를 잡았다.

골프 선수로서의 ‘운명’을 알았던 것일까. 골프 선수로서의 두각을 드러낸 그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왔다. 고된 훈련부터 험난했던 미국 정착기, 오랜 노력 끝에 들어 올린 PGA 투어 우승까지….

꿈을 이루기 위한 그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강성훈은 투어 9년차에 마침내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꿈을 이뤄냈다. 불굴의 집념을 발휘한 그의 도전 정신은 여전히 뜨겁게 끓고 있다.
 
전국대회 휩쓴 제주소년, 꿈을 향해 성큼

강성훈 선수는 유년시절 아버지 강희남씨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선수로 성장했다. 강희남씨 제공.
강성훈 선수(왼쪽)는 유년시절 아버지 강희남씨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선수로 성장했다. 강희남씨 제공.

“골프, 저도 한 번 해볼래요.”

서귀포시 출신인 강성훈은 서귀포초등학교 3학년 재학 시절 골프를 시작했다. 그는 수준급 골프 실력을 가진 아버지에게 “저도 한 번 해보면 안돼요?”라는 말을 던졌고 몇 차례 조언을 거친 후 그가 보인 퍼팅 자세는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강성훈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으로 활동하며 남주중, 남주고, 연세대를 졸업했다. 그는 국가 상비군 및 중‧고 연맹 전국 12개 대회에서 9개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고등학교 시절엔 KPGA 대회에서 그 많은 프로 선수들을 제치고 아마추어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강성훈은 가장 일찍 일어나 가장 늦게 자는 선수였다. 그의 부단한 노력은 성과로 이어졌다. 수많은 유망주와 아마추어 골퍼 경쟁에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훈련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버지 강희남씨(69)는 강성훈에게 더 엄격하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하게 했다. 강성훈은 묵묵히 훈련에만 집중했다. 

아버지 강씨는 “겨울 미국 동계 훈련 땐 50개주 지역예선에서 18홀에 10언더, 하루 36개 홀 중 18홀에 4언더의 최고의 기록 경신 행진을 이어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성훈은 유년시절 제주에서 훈련을 이어가며 더 큰 무대로 진출해야겠다는 꿈에 한 발짝씩 가까워졌다.
 

강성훈 선수의 세레머니. 사진=PGA 제공.

■고난의 연속이었던 미국에서의 도전
강성훈은 유년시절은 물론 국가대표 때도 제주에서 한라산 등반 등 꾸준히 매일 5시간 이상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단련했다.

그는 “골프 선수로서 그리고 작은 제주도 출신으로서 항상 자긍심을 가지고 훈련에 임했고 도전, 성공하는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무대에 데뷔하기 위해 아버지와 2000년대 초반 미국으로 향했다. 아는 사람도 지낼 곳도 마땅히 지낼 곳도 없는 미국 생활은 초반부터 녹록지 않았다. 처음엔 대회는커녕 훈련을 할 수 있는 골프장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강성훈은 “한 번은 골프 대회가 열린다는 워싱턴으로 무작정 향했는데 퍼팅 연습을 할 수 있는 골프장조차 제대로 몰라 애를 많이 먹었다”며 “그런 와중에 한국인들을 만났고 많은 도움을 받아 골프장에서 훈련을 했다”고 기억했다.

여기에 영어 실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점도 미국 생활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하루 일과 중 오전과 낮 시간에는 골프 연습과 고난도 훈련, 저녁에는 영어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그가 미국에서 훈련을 할 때 피로가 겹치고 제대로 먹지를 못해 체력이 바닥 났을 때 제일 먼저 한국음식을 찾아 체력을 회복하곤 했다. 이런 그는 꾸준히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이어갔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뒤 2007년 프로로 전향했다. 프로 입문 후에는 2008년 한국프로골프 신인왕에 올랐고 2010년 유진투자증권오픈 우승, 2013 제3회 최경주CJ인비테이셔널 우승에 이어 한국프로골프 상금왕도 차지했다.
 

2017년 10월 17일 ‘더 CJ컵 @ 나인브릿지’ 대회를 앞두고 ‘제주의 아들’ 강성훈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겠다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임창덕 기자.
2017년 10월 17일 ‘더 CJ컵 @ 나인브릿지’ 대회를 앞두고 ‘제주의 아들’ 강성훈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겠다며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임창덕 기자.

■‘제주의 아들’ 결국 PGA 우승 ‘집념’
강성훈의 PGA 투어 도전은 계속됐지만 아쉽게도 우승과의 인연은 번번이 미뤄졌다. 그는 2012년 PGA 투어에서 30개 대회에 나갔지만 22번이나 컷 탈락하며 2부 투어로 밀려났다.

강성훈은 칼을 갈고 닦았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2016년 PGA 투어에 재입성하며 우승을 향한 도전 의지를 불태웠다.

그는 2017년 셸 휴스턴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강성훈은 그해 10월 CIMB 클래식과 지난해 7월 퀴큰 론스 내셔널에서 3위에 오르며 우승권을 맴돌았다.

강성훈이 PGA 투어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은 투어 9년차인 지난 5월. 그는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트리니티 포리스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PGA 투어 AT&T 바이런 넬슨(총상금 79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보기 3개로 4언더파 67타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23언더파 261타를 기록한 강성훈은 공동 2위인 멧 에브리(미국)와 스콧 피어시(미국)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제주의 아들, 집념의 사나이가 꿈꿔오던 일을 현실로 이뤄낸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PGA 투어 정상에 오른 한국 선수 가운데 투어 입문 9년 차에 첫 승을 거둔 선수는 강성훈이 처음일 정도로 그는 ‘될 때까지’ 도전했다. 

강성훈은 “무조건 그리고 무엇이든지 도전했다. 도전하는 자에게 길이 있고 길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마음 속에 각인된 강성훈의 ‘제주인 DNA’

강성훈이 지난해 서귀포시 나인브릿지골프클럽에서 열린 'THE CJ CUP@NINE BRIDGES' 대회에서 세컨샷을 날리고 있다. JNA GOLF 제공.
강성훈이 지난해 서귀포시 나인브릿지골프클럽에서 열린 'THE CJ CUP@NINE BRIDGES' 대회에서 세컨샷을 날리고 있다. JNA GOLF 제공.

강성훈은 제주도에서 골프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유망주와 아마추어 선수 등에게 무엇이든 도전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제주도는 자그마한 섬이다. 세계지도에서도 제주도는 점(‧)하나로만 표시된다. 이렇게 작은 섬 제주에서 태어나 PGA 투어 우승을 한 것에 대해 큰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성훈은 “도전하는 자에게 길이 있고 길이 보일 것”이라며 “꾸준히 훈련할 수 있는 성실함을 갖추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스포츠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골프는 단시간에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종목이 아니고 아주 긴 시간에 걸쳐 도전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선수만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단언했다.

강성훈의 도전은 계속된다.

“선수로서 최종 목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힘이 닿을 때까지 선수로 생활하며 도민,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입니다” <끝>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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