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의 물음표
‘사이’의 물음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1.2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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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사람들은 삶을 모를 때면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현실을 알면서 사람을 보면서 살고 사람에게 상처를 입으면 땅을 보면서 그곳에 뿌리박은 식물에 관심을 두게 된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사람에게 다치면 사람을 외면하고 자연을 찾게 되는 모양이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이 자연으로 스며들어 세상과 인연을 끊다시피하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이 사오십대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다.

그래서일까. 나도 한동안 오름만을 찾아다녔다. 제주에 산재해 있는 오름들을 찾고 나무를 손질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연만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서 그동안 살아온 삶을 덜어내고 내려놓으면서 한편으로는 지나간 삶에 대해 반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원망하기도 하며 내일을 다짐하기도 한다.

이슬이 깔린 산길을 걸어 오름을 오르다 보면 온갖 풀과 꽃, 나무가 말없이 지나가는 나에게 눈길을 준다. 나도 나름대로 한 마디씩 말을 건네면서 오른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분명히 낙엽수인 나무에 싱싱한 이파리가 달린 모습을 보게 된다.

의아해서 자세히 보면 다른 나무에 기대어 감고 올라간 넝쿨 식물이다. 칡이나 으름뿐만 아니라 줄사철과 등수국 등이 대표적인 수종이다.

나무를 감고 올라가다 보니 나무는 울퉁불퉁 상처투성이가 되고 결국은 기둥이 되는 나무는 죽어서 앙상한데 자신은 싱싱한 잎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고 나면 나무는 죽어버리고 언젠가는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넝쿨 식물들은 자신만은 잎과 가지를 펼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저 나무가 썩어 쓰러지고 나면 넝쿨 식물은 바닥으로 널브러져 연명하다가 다른 나무들에 의해 햇빛이 차단되고 광합성의 방해를 받으면 결국 말라 죽게 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그런가 하면 울울창창한 편백이나 삼나무 숲에 들어가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성질이 구불구불한 나무인데도 다른 나무들처럼 곧게 자라 키를 견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삼밭에 쑥대라는 속담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바닥에 바짝 붙어 자라는 쑥이 한 해에 3~6m까지 자라는 삼밭에서는 삼과 경쟁을 하면서 키를 키우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건전한 경쟁 관계를 의미하는데 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인용되기도 한다.

한 나무에 기대어 피해를 주거나 해치지 않고 건전한 경쟁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관계라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말도 있다.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의미로 친구가 잘되는 것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축하하고 기뻐해 준다는 의미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기생이 아닌 공생의 관계라야 한다는 것이 만고 불변의 진리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그러하고 스승과 제자, 조직과 개인 관계 또한 그러하다.

한쪽이 쓰러지면 나머지도 견딜 수 없기에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기대어 사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가 어찌 되든 이 순간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상대를 부정하는 사람은 결국 그들에 의해 부정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 개봉해 국·내외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영화 기생충에서도 감독은 인간의 이상적 관계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있다.

기생이 아닌 공생과 상생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물음표를 찍으며 이슬 깔린 오름길을 걷는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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