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해서 ‘사기’ 당할까
멍청해서 ‘사기’ 당할까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11.2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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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달형 인물’ 이야기가 있다.
이 사기꾼 인물형은 지방에 따라 김선달이나 정수동 방학중 등으로 불리는 데 곤궁한 처지를 면하려고 남을 잘 속인다.
능력에 닿지도 않는 일을 맡고 나서거나 모르는 사람을 아는 체하는가 하면 가짜 부고를 내 부의금을 거둔다.

대동강물을 파는 것은 이들 이야기중 단연 압권이다.
황해도 서도(西道)소리 ‘배뱅이굿’에 나오는 엉터리 박수 또한 외동딸의 혼령이라도 만나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용해 거짓 넋풀이를 해주고 재물을 얻는다.
또 오래된 영화이지만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스팅’은 희대의 사기꾼들이 한탕 잘 챙기는 줄거리다. 이 영화에서 사기를 당하는 피해자는 잘 난 체하는 ‘멍청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사기는 진화한다. 요즘 가장 흔한 사기는 보이스 피싱이다.  김선달형이나 스팅의 경우처럼  해학이 내재된 ‘웃음’이 없는 사기다. 피도 눈물도 없이 갈취할 뿐이다.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8년 전국 지역 별 보이스피싱 피해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인구 1만명 당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 제주도(17.0건)다.

지난 한해 제주에서 110여 명이 전화 낚시줄에 걸려 69억원을 빼앗겼다. 이달 11월에도 며칠 사이에 은행원과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는 보이스 피싱 3건이 연이어 발생해 6800만원의 피해를 냈다.

제주 사람들이 멍청해서 사기를 잘 당하는 걸까. 하지만 ‘멍청한 사람’들이 사기를 잘 당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발생하는 각종 사기 사건은 20만 건이 넘는다. 멍청한 사람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사람들도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기를 당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기꾼은 프로이고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프로 내기꾼과 아마추어가 내기 바둑을 두면 누가 이기겠는가? 프로가 이길 것은 뻔한 이치와 같다. 
사기꾼들은 끊임 없이 새로운 사기 기술을 연마하고 지식을 습득한다. 프로 사기꾼들의 기술은 정교하다. 그들은 사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법과 임기응변 등의 다양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다. 그러면 왜 사기를 당할까. 자기 스스로를 과대 평가하는 반면 상대방을 과소 평가하는 데서 사기를 당한다. 실제로 제주지역에서 보이스 피싱에 걸려든 피해자들을 보면 웬걸, 교육계 출신 등 지식인층이 많다.
그렇다면 저학력자가 적은 반면 학력이 높고 평소 삶에 자신감이 상당히 넘치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사기에 잘 걸려드는 것이 아닐까.

▲사기는 어지러운 세상의 부산물이다. 시절이 하수상할수록 더 기승을 부리는 게 사기다.
‘김선달형’ 고전적 사기는 고작 밥 한끼, 술 한잔을 위한 것이었고 조금 큰 짓이라 해도 가진 자와 잘난 체하는 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는 것은 아니었다.

퇴직금을 몽땅 빼앗거나 80이 넘은 노파의 노후 생활비까지 탈탈 털어가지는 않았다. 더욱 문제는 돈보다 영혼을 털어가는 정치판의 사기꾼들이다.
요즘 정치인이 사용하는 ‘국민의 뜻’이란 말은 ‘우리 국민 모두의 뜻’ 이 아니다. 그들만의 ‘골수 지지층 국민’을 말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 라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정의도, 공평도, 자유까지도 그들의 기준으로 멋대로 정의하는 이런 ‘상투적 사기’를 과연 제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제주 사람들이 사기에 잘 걸려든다고 하지만, 그래도 정치인들에게는 사기를 당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가을 끝자락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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