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창의성의 보물창고, 그림으로 표현해요’
‘책은 창의성의 보물창고, 그림으로 표현해요’
  • 홍성배 기자
  • 승인 2019.11.20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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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애월고 미술과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했다.

잘 가. 이제 내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건우는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를 읽고 어두운 밤 구불구불한 골목길, 허름한 벽,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화폭에 담았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그림 속에서 어두운 골목을 오르려던 건우에게는 어둠을 밝혀주는 가로등이 있었다.

주변에 무관심한 채 앞만 보고 살아갔던 삶을 돌이켜 보고 주위를 관심 있게 둘러보며 자신을 위안 하는 것들, 감사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건우의 생각이 그림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는 건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이달 초 제주학생문화원에서 열렸던 애월고등학교(교장 김형준) 미술과의 제3창송미전에서 전시됐던 작품 중 하나의 이야기다.

애월고 미술과는 해마다 책을 읽고 감명 받았던 키워드를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해 작업에 나선다. 산고 끝에 완성된 작품들은 창송미전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졸업작품전에서 ‘Reading, Thinking, Making’이라는 주제로 선보인다. 올해도 학생들이 전공수업에 충실하면서 꾸준히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눈 결과물은 한국화, 서양화, 조소, 디자인, 매체미술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재탄생했다.

이처럼 미술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에게 독서가 중요시되고 그 결과물이 작품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학과의 설립과 관련이 있다. 2017년 애월고에 미술과가 설치되면서 학과 교사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학생들이 작품을 만들면서 자칫 테크닉에만 매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생각은 없고 기교에만 급급하게 된다면 학원과 다를 게 뭔가 하는 의구심이 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학교가 잘할 수 있는 영역, 즉 창의성을 키워주는 방안을 찾다가 독서에 시선이 머물게 됐다.

애월고 미술과는 매주 강사를 초빙해 연중 독서특강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물론 고교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해보는 토론과 발표는 결코 녹록하지 않다. 사실 중학교때까지 제대로 책을 읽어보지 않은 학생들도 여럿인 것인 현실임에야.

그러나 다양한 활동-감성 나누기, 공감 훈련, 쓰기 등-을 지속해나가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해 나가고, 사회를 보는 자신의 시각을 갖춰나가게 된다.

1학년 현이는 과거에는 발표에 어려움이 많았다. 글을 읽고 쓰지만 생각이 잘 정리가 안돼 우왕좌왕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하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면서 발표할 때 말을 더듬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동규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며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서점에도 가곤 한다고 덧붙였다.

학교에서도 이들의 독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미술과에 별도 도서실을 마련했다. 3년째 연간 1500만원을 도서 구입에 투입하고 있고, 향후에도 계속 도서를 확충해 나갈 계획이다.

걱정 반, 기대 반의 상황에서 시작한 이 사업은 벌써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먼저 첫 해인 20172학기의 경우 학생들이 평균 11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토론을 준비하는 등 참여도도 기대 이상이다. 여기에 더해 대학 입시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1기 입학생들이 올해 첫 입시를 준비 중인데 나름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오건일 예술부장은 미술과는 수시전형 위주로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데, 지속적인 독서와 전시회 활동이 큰 도움이 된다대학마다 미술활동보고서나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데 독서와 전시회를 통해 입시와 자기 정체성 확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을 읽고 이를 재해석해서 작품으로 완성하는 작업과정은 고민의 연속이다. 무엇을 그리고, 재료는 무엇을 선택하고, 과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주제를 선정하고 작품으로 연결하는 과정이 실제 작업시간보다 더 길고 힘든 과정인 셈이다. 그때가 되면 교사들은 5~7명의 학생을 나눠 맡고 일대일 대화를 지속해 나간다. 수업 중간 중간의 쉬는 시간 대부분이 토론시간인 셈이다.

오건일 부장은 계속되는 토론과 고민 속에서 자아 정체성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다고 피력했다.

오 부장은 “1~3학년을 놓고 볼 때 학년간 격차가 너무 크다흐르는 시간 속에서 생각하고, 쓰고, 토론하면서 자기를 드러내는 작업을 많이 하다 보니 정체성을 찾아가고 가치관을 확립해 나가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3회 창송미전 초대의 글의 일부다.

“(중략) 아직 배움의 과정에 놓여있는 학생들이지만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수정을 반복하여 노력한 결과, 본인만의 열정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문학을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제작하는 것에 진지한 마음으로 임하며 올바른 지식과 사고를 표현하는 예술가로 성장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홍성배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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