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4·15 패거리 대결’
다가온 ‘4·15 패거리 대결’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11.1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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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도 끼리끼리 냇물도 끼리끼리/ 운동장에 우리들도 끼리끼리 모여 논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부르는 ‘끼리끼리’라는 노래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벗어나면서 파행된다.

우선 혈연, 지연, 학연…. 이른 바 연(緣)도 변질된다. 요즘은 혈연, 지연, 학연에 이어 ‘흡연’도 생겼다고 한다. 담배 피울 곳이 사라진 흡연파들이 골목길이나 사무실 구석에 모여들다 보니 연대감(?)이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우스갯소리다. 하지만 이런 파벌은 아름다운 측면이 있다. 인간의 무리 짓기가 본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타적’ 좌우 이념의 ‘연’이다.
이런  배타적 파벌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한 사람들의 집단’이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퉈온 것이 인류 역사인 만큼, 배타적 파벌은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렇다 해도 한국인의 파벌 의식은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미국 헌법을 만든 제임스 매디슨(미국 제4대 대통령)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배타적 파벌의 해악을 가장 우려했다.
그는 파벌이란 사회의 공공선에 역행(逆行)하는 공통된 열정과 이해관계로 단결·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그는 파벌의 형성은 본성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유에 있기 때문에 파벌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파벌의 영향력을 통제하는 쪽에 해법을 찾았다. 그가 제안한 해법은 파벌의 이해를 또 다른 파벌의 이해로 견제하고 감시하도록 함으로써 파벌들이 공공선과 균형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그것의 핵심적인 장치는 어느 파벌도 정부의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삼권분립을 채택하는 것과 선거를 통한 공정하고 사심 없는 대표자의 선출이었다.

▲도민의 대표자를 선출하는 2020년 4·15 총선이 이제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유권자들에게는 눈에 띄는 후보자 군도 보이질 않고 이슈도 떠오르지 않고 있다. 보이는 건 혈연, 학연, 지연 등에 기댄 ‘끼리끼리’ 결속과 좌우 이념 대립뿐이다.

공식 조직보다 동창회, 향우회 등 비공식조직만큼 이념의 구분은 효용성이 크게 먹힌다. 배타성이 강할수록 파벌의 내부 통제도 강화된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정책도 공약도 다 필요 없고 끼리끼리 패거리 대결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남이가’는 뒤집어보면 ‘남은 곧 적(敵)이다’라는 배타성에 다름이 아니다.

개인의 이기심을 집단 이기심으로 치환해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욕심이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파벌은 인간 나약성의 증표이기도 하다.

▲사회심리학에서 자기네 집단은 좋게 보고 다른 집단은 나쁘게 보는 것을 ‘내(內)집단 편향적 지각(知覺)’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총선 선거판이 되면서 이 ‘편향적 지각’이 더욱 극성이다.
‘조국 사태’는 그 중 대표적인 예이다. 하나의 사건을 보는 눈이 왜 이렇게 극과 극으로 다를까. ‘내편 네편’만 있을 뿐 정의가 사라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러니 가까운 이웃 간이라도 편향이 다를 경우 서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다.

마피아에는 ‘오메르타(omerta)’라는 침묵의 계율이 있다. 시칠리아 속담에 “듣지도 보지도 않고 조용히 있는 자만이 100년을 편안하게 살 수 있다”가 곧 오메르타다.

그런데 지금 시칠리아는 어떤가. 중세 사회의 흑백사진 같은 모습으로 사회가 정체돼 있는 것은 이런 침묵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정말 망국적 국민 분열을 치유하고 ‘진짜’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4·15총선이 됐으면 좋겠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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