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통해 운명처럼 만난 고서 ‘탐라지’
인연 통해 운명처럼 만난 고서 ‘탐라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1.1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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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지(耽羅誌)(1933)

이원진 ‘탐라지’ 증보해 편찬한 책
마지막장 고창현 선생 서명 눈길
‘탐라지(耽羅誌)’ 표지 전체.
‘탐라지(耽羅誌)’ 표지 전체.

이제 몇 달만 지나면 헌책방을 시작한 지 꼭 십년이 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그간 우리 책방에도 이런저런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 제일 큰 변화는 아무래도 육지부에서 이곳 제주로 책방이 옮겨온 것일게다.

당시 책방 이전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거의 대부분 우려를 표했었다. ‘거기로 가면 책의 수급이 어려울 것이다’, ‘육지와의 우송료 차이 등으로 책방 운영에 불리할 것이다등등.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하는 그들에게 나름 우리 제주만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다 극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는 쳤지만 내 마음 속 한 켠에 일말의 불안감도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리 걱정해 주던 분들은 그 동안 헌책방을 해서 밥은 먹고 사냐시며 그냥 말로만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으로 많이들 도와주셨다. 주변에 책을 정리하는 분들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기도 하고, 소량일 경우 직접 포장해서 택배로 보내 주시기도 했다. 그분들 덕분에 도내에서는 잘 안 나오는 책들을 그나마 우리 책방에 구비할 수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지난 주에도 그간 두 번밖에 못 뵌 인연이었지만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던 분으로부터 간만에 전화가 왔다. 바로 옆에서 서점을 하시던 분이 폐업을 하시면서 창고에 있던 책들을 정리하신다는 전언이었다. 보내주신 사진에 담긴 책들 가운데 일부는 우리 책방에서도 필요한 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차량 도선료 등을 포함한 상업적인 계산으로는 도저히 수지가 안 맞는 일이었지만 간만에 연락을 주신 그 분의 마음씀씀이에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육지부로 출장을 나갔다. 그 와중에 차가 고장까지 나서 고치느라 추가된 시간 등을 포함한 손익계산서는 더 엉망이 되었지만, 또 그런 인연을 통해 창고 바로 옆 고서점에서 보기드믄 책과 만날 수 있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난 책이 바로 탐라지(耽羅誌)’이다. 별도의 판권지가 없지만 일본국회도서관에 소장된 동일 판본에 따르면, 1933년 오사카에 있는 제주도실적연구사(濟州島實蹟硏究社)에서 비매품으로 출판되었다. 지은이는 1932년 같은 곳에서 제주도실기(濟州島實記)’를 발표하여 제주 향토사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던 신천(信天) 김두봉(金斗奉)선생이다. 서문은 탁라국서(乇羅國書)’를 지은 진재(震齋) 이응호(李膺鎬)선생이 1932(乇羅紀元後千五百九年壬申)에 썼다.

저자가 영주음사(瀛洲吟社) 회원으로 제주에 관한 한문 자료 발굴에 힘쓴 결과, 1653년 편찬된 이원진(李元鎭)탐라지(耽羅誌)’를 기본으로 선학들의 저작 등 각종 자료를 참고하여 첨삭하고 증보하여 편찬한 책이다. 철필로 직접 긁어서 만든 원고를 등사해서 출판한 책이라 군데군데 오탈자가 보이지만 선생의 제주사에 대한 열정만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탐라지(耽羅誌)’ 고창현 선생 서명 부분 확대.
‘탐라지(耽羅誌)’ 고창현 선생 서명 부분 확대.

책의 마지막장에는 1925년 지은이와 함께 제주기독청년회를 조직하는 데 참여했던 고창현(高昌炫) 선생의 서명이 보이는 데 어찌된 일인지 그 날짜가 1924(大正13) 8월이라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지금도 또 한 분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출장 나온 객지에서.이 책과 다른 책들 그리고 그 분들과의 인연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모두 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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