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꿈
인류의 꿈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1.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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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제주평화연구원장·논설위원

얼마 전에 서울의 모 대학 교수들이 공동학술회의를 위해 제주평화연구원을 찾았다. 그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날 일부러 정치적인 화제는 올리지 않고 가벼운 이야기만 나눴다. 그러나 제주 관광산업이 활력을 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관찰이 언급되면서 화제는 점차 한국 경제 전반으로, 그리고 결국은 현 정부의 정치, 경제정책 철학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과거 한국의 보수 정부가 취해온 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철학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현 정부가 취하는 사회주의적 분배 우선 정책 철학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인류는 모두가 잘사는 공동체를 꿈꿔 왔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 레닌, 모택동은 공산사회를 이상향으로 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공산주의는 허무하게 끝났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수정한 사회주의 이념이 대두됐고,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의 관념이 널리 퍼지게 됐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은 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보다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문제가 제기됐다. 유럽 경제가 미국보다 기를 펴지 못 하는 이유이며 좀 더 들어가면 결국 공산주의 체제가 망한 이유이기도 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소련경제가 자원이 많고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70년을 지탱했지만, 세계화가 크게 진전하고 국가 간 긴밀한 교류와 경쟁이 심화하는 현 세계에서 자원이 없는 한국경제는 그리 오래 버티기가 어려울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 정부를 지지하는 측은 소득 불균형 해소 정책으로 인해 기업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유럽 사회가 미국 사회보다 더 인간적이며 인류의 꿈에 가깝다고 말한다.

과연 어느 시각이 옳은 것인가?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우리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이며 부정확하기 때문에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 역시 지식인들의 자기 확신을 매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지식인만이 아니라 대중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은 공리주의자로서 다수의 행복이 의사 결정의 원칙이 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지만, 소수의 존재를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무시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옳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소수 의견을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다수의 횡포는 정부의 독재보다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국민 대다수는 분배의 확대를 통한 복지 수준 향상을 원한다. 정치가들은 이러한 다수에 기대려는 동기가 매우 크다. 그러나 국가 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저버리면 돌이키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바탕에 두고 소수의 목소리와 계속해서 대화해야 한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체제로서 문제가 많았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복지 확대를 할 수 있는 체제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 확대 일변도로 나가는 것은 곤란하다.

2000년 전 예수가 던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의 메시지가 인류 사회에 보편적인 가치가 되고 모두가 그 메시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 끝없는 경쟁과 발전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 하지 않을까?

그날 만찬 대화를 마치면서 내 머릿속에 맴돌게 된 화두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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