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시인’
‘요리하는 시인’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1.11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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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제주도에 요리하는 시인이 있어 화제다. 그 요리하는 시인이 첫 시집 낙타와 낙엽을 도서출판 시와실천에서 상재(上梓)해 또 한 번 관심을 끌고 있다.

요리하는 시인이며 작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이지민 시인.

 

낮달은/싱거운 것들을 담으라 하고/잠에서 깬 추억들은 비장하게 담으라 하네//후드득 비 내리고/마음갈피 잡지 못하는 내게/잠잠 하라 차분하라 다독이는데/자꾸만 마음이 끌려.”

 

2019년 깊어가는 가을에 시인은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2016년 문학세계 신인상으로 한국 문단에 고개를 내밀더니 직접 운영하는 시인의 집(본초불닭함덕집)에서 문단 동료들과 함께한 조촐한 모임도 화제가 됐다.

그의 첫 시집의 표제(表題)낙타와 낙엽은 이렇게 시작된다.

 

햇살은 눅눅한 기억을 말리려는데/긴 그림자는 알싸한 공기를 몰고 /낙엽에 드러누워 시집을 읽고//시집을 읽으려면 옷깃을 여며야 하나/기억이 바람을 타고/눅눅한 기억은 말려서/산들거리는 사막의 저녁

 

그리고 이 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빠른 세월을 탄식하다/달아난 기억 속 /달 여문 가슴 울컥 맞대면/담장 하나 넘지 못하고/드러누운 낙타의 눈물/서로를 향했어도 철저히 혼자인/삶을 보채는데.”

 

시집 해설에서 이어산 시인의 지적처럼 그가 시에서 자각을 한다는 것은 치유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며 바로 미래를 개척해 나갈 의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 속의 시인을 가장 행복하다고 했을까? 그래서 시인은 오늘도 불을 밝히고 자신을 끼적대고 있을까?

시인은 달 여문 가슴을 울컥 맞대면 담장 하나 넘지 못한다. 그것은 드러누운 낙타의 눈물 때문이다. 철저히 혼자인 낙타는 왜 눈물을 흘릴까? 철저히 혼자인 시인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시인은 오늘 밤 마을 사람들과 서우봉에 올랐을까?

그리고 요리하는 시인은 감히 어느 시인도 근접하지 못하는 역사 속에서 시어를 찾기 시작했다. 시 속에서 역사의식을 꿈꾸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험난한 과정이다. 어느 시인도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지민 시인의 ‘4월의 너븐숭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좌익, 우익 갈 곳 없는 어둠/길 잃어 헤매다 한 눈 파는 사이/시커멓게 게워낸 절망의 숱한 언어들/성난 숨결의 메마른 외침/4월을 도둑질하고/허기진 배 감아쥔 채 미리 운 가슴/뭇매를 맞듯 밤새 내리친 그 총에/만신창이가 되었구나송두리째 뽑힌 자존심마저 잔인한 4월에 쫓겨/엉덩이 살랑이며 5월로 간다/43의 혼들을 끌어안고.”

이지민 시인은 역사의 처참한 비극을 가슴 깊이 끌어안기 시작했다. 제주의 역사가 시인에게 시가 되기 시작했다. 역사가 시가 됨은 이 땅의 시인들이 바라는 오랜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지민 시인은 여류라는 말을 던져버렸는지 모른다.

나는 2017년 함덕문학 창간호를 발간하면서 이지민 시인을 처음 대면했다. 그 때가 시인이 문학세계를 통해 한국 문단에 고개를 내민 그 다음 해라 여겨진다.

나는 요즈음 가끔 요리하는 시인의 블로그에서 그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더듬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요리하는 시인은 오늘 밤도 요리하고 밤을 새우면서 아름다운 시어들을 줍고 있다. 꼭꼭 숨어서 형틀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마음을 조아리면서 내면의 아픔을 시어로 찍어 내며 긴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요리하는 시인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 개인의 아픔을 뛰어넘어 역사를 걸머쥔 시인이 되겠다는 그의 다짐이 동료로서 너무나 가슴이 벅차고, 우리 문학이 풍요롭게만 느껴진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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