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광연세 김만덕 할망과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은광연세 김만덕 할망과 함께 떠나는 시간여행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1.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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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 사단법인 질토래비 이사장

제주에서는 혜일 스님·어승마 노정·김만덕 할망을 3()로 일컫곤 한다. 만덕 할망이 무엇을 기이하고 기적적으로 행했기에 이러한 말이 전해지는 걸까.

1840년 제주에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할망의 기이하고 기특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은광연세’(恩光衍世)라는 편액을 후손에게 선물한다. 내용은 은혜로운 빛으로 세상이 물들다라는 의미다.

설문대 할망·삼신 할망·조왕 할망·할망당에서 보듯 할망이란 말이 친근하게 쓰이기에 필자는 곧잘 은광연세 김만덕 할망이라 부른다.

어려서 고아가 된 소녀 만덕은 배고픔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이겨내려 교방에 들어가니 어느 날 기생이 된다. 하지만 관기가 된 처녀 만덕은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키려는 극복과 반전의 삶을 꿈꾼다.

극복과 반전은 생각과 도전, 그리고 모험에서 비롯되고 관계에서 열매 맺는다. 그러기에 만덕은 한 번 기생은 영원한 기생이 돼야 하는 사회 관습의 틀을 깨어 마침내 양인으로 돌아온다.

큰 부자는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생각이 남다른 만덕은 목 좋은 관아 주변이 아닌 산지포구와 화북포구 등지에서 객줏집을 차리곤 특산물을 찾아 제주의 산하를 누비며 장사의 지평을 넓혀 간다.

갑인년(1794) 전후 제주에 몰아친 살인적인 흉년을 같이한 만덕은 전 재산을 내놓아 구휼미를 사들여 나라도 구하지 못 한 도민들을 살려낸다.

이에 제주목사 유사모가 만덕의 선행을 조정에 보고하니 정조는 만민의 귀감이요, 청사에 빛날 선행이니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만덕은 임금님이 계신 대궐과 천하의 명산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을 뿐입니다라며 벼슬 달라는 남자들과는 달리 답한다.

1629년부터(1823년까지) 제주도에 내린 출륙금지령(出陸禁止令)으로 여자는 한양에 갈 수 없었으나 어명으로 만덕만이 1796년 제주 바당을 건넜다. 이듬 해 봄 금강산을 구경하고 제주로 귀향하는 할망에게 이가환·박제가·정약용 등이 칭송의 글인 찬시들을 지어 건냈다.

특히 울며 송별하는 만덕에게 좌의정 번암 채제공은 만덕전을 지어 선물했다. 다음은 그 중 일부다.

만덕은 한 척의 범선을 타고 구름바다를 건너서 병진년(1796) 가을 서울에 들어왔다.이어 (정조가) 명하여 내의원 의녀로 삼고 의녀들의 반수로 머물게 하였다. 만덕은 대궐로 들어가 왕과 왕비께 문안하였다.만덕의 이때 나이가 오십팔 세였지만 처음으로 절과 불상을 보았다.만덕의 이름이 서울에 가득하여 공경대부와 선비들이 만덕의 얼굴을 한 번 보기를 바라지 않음이 없었다.”

181274세로 이승을 하직하고 건입동 고으니모루에 잠든 만덕 할망은 1977년 사라봉 모충사로 모셔졌고, 묘비탑과 기념관이 건립됐다. 2000년대 들어 만덕 할망의 위업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제주도가 만덕상 시행과 객줏집 복원, 그리고 기념관을 건립했다. 재작년부터는 김만덕 주간을 설정해 나눔의 큰잔치를 소외된 이웃과도 함께 펼치고 있다.

만덕 할망의 기이하고 기적적인 삶에 매료된 필자 역시 나눔 잔치에 동참하려 제40회 만덕제를 봉행하는 사라봉 모충사를 찾았다. 할망의 유업을 이어받은 김영순·박경란 두 분의 만덕상 수상 축하 자리에도 함께했다. 그리고 나눔의 삶을 따라가는 김만덕 유적탐방의 안내자로 참여했다.

만덕 할망에 대한 기록은 적지 않으나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어떻게 살며 장사를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아직 없다.

그럼에도 번암의 만덕전과 묘비문 등 여러 기록에서 할망의 기이하고 기적적인 삶을 유추할 수는 있다. 물류 객줏집을 운영했을 조천포구와 연북정 또한 만덕 할망의 체취가 묻어나는 곳이다.

만덕 할망은 내겐 시대를 앞서간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여인, 그리고 만 가지의 덕을 베푼 할망으로 흠모 되리라. 또한 예사롭지 않은 만남이었기에 정조대왕과 번암 채제공이 연모한 여인으로도 기억되리니.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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