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복지타운에 드리운 '불신'
시민복지타운에 드리운 '불신'
  • 정흥남 편집인
  • 승인 2019.11.07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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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는 생각하고 난 후에 돌을 잡고, 하수는 돌을 잡고 나서 생각한다.’

이른바 상수와 하수를 구분하는 대표적 바둑격언이다. 그런데 상수와 하수는 비단 바둑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현실에서도 종종 이를 연상시키는 일들이 목격된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제주시 시민복지타운 정책실패다.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하수의 행마’라는 바둑용어를 떠올리게 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고 있는 행정의 ‘패착’ 때문이다. 그런 하수의 행마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의 제주시민복지타운 문제는 출발 때 예고됐다. 1997년 당시 이 일대는 ‘중앙공원’ 조성지로 도시기본계획에 반영됐다. 당시 구상은 제주의 관문도시인 제주시 중심에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제주를 상징할 수 있는 ‘도심 속 대공원’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우여곡절이 따랐고, 결국 도시기본계획 변경을 통해 지금의 시민복지타운이 됐다.

시민복지타운은 제주시청사와 지방정부 합동청사를 한 곳에 집중화함으로써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민에게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쾌적한 도시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누가 보더라도 그럴싸한 포장이다.

제주시청 이전을 철석같이 믿은 시민들이 이 일대 토지를 구입했다. 그런데 핵심인 제주시청이 사라졌다.

#시청이전 첫 약속 불이행

제주시청 대안으로 여러 정책이 쏟아졌다. 원희룡 제주도정은 제주시청 예정부지 일부에 행복주택 건립을 추진했다. 그런데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제주도민 64.4%가 찬성하는 여론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이를 백지화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 곳 토지를 매입한 주민들에게 잠복해있던 불평과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제주시가 최근 이른바 시민복지타운 지구단위계획 개선을 위한 주민설명회를 가졌다.

제주시는 단독주택과 3가구 이하 다가구주택이 가능한 시민복지타운 건축 허용용도를 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수용가능한 선에서 최대 5세대까지 확대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곳엔 단독주택 209필지, 준주거용지 101필지 등 310필지가 조성됐는데, 현재 단독주택 70필지, 준주거용지 50필지 등 120필지에는 주민들의 입주가 완료됐다.

그런데 제주시 주민설명회장은 또 다른 파열음의 장이 됐다. 주민들은 제주시청사 이전 무산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쏟아냈다. 제주시가 제시한 ‘대책’에 대해서도 찬반이 갈렸다.

#설익은 규제완화 또 다른 갈등

한 주민은 제주시가 조성한 다른 도시개발사업 지구와 비교해 시민복지타운 조경면적이 넓은 점과 강화된 주차장 확보 기준의 완화 등 규제완화를 요구했다.

반면 또 다른 주민은 기존 계획에 따라 도심 속 전원주택 형태로 건물을 지었고, 더 편리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왜 이제 와서 규제를 푸는지 알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양쪽 모두 타당한 논리다. 규제완화로 과밀개발이 이뤄질 경우 이미 건물을 지어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에겐 정주환경 악화 걱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반면 아직 입주하지 않은 주민입장에서 보면 다가구주택 확장 등 토지이용률 제고라는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주민 간 이해가 극명하게 충돌하는 상황이다.

제주시는 이번 설명회에서 나온 의견을 검토해 지구단위계획을 수정·보완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하지만 둘로 쪼개진 주민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담아낼 묘책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저런 다양한 상황을 모두 헤아린 뒤 최상의 수를 내야 하는데, 우선 돌부터 꺼내든 뒤 반상 이 곳 저 곳을 헤매는 하수의 행마가 떠오르는 이유다.

정흥남 편집인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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