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에 초점을 맞추면, 실마리가 보인다
프레임에 초점을 맞추면, 실마리가 보인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0.31 18: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치완 제주대 철학과 교수·논설위원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다는 프레임 씌우기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통용되고 있다.

실제로 상당한 효과가 있어서 물 타기, 프레임 옮기기, 무대응 등 다양한 해결법에도 불구하고 한 번 씌워진 프레임을 빠져 나오기란 쉽지 않다. 늘 프레임에 갇혔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점을 프레임에 맞추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

조선 지식인들은 청나라와 전쟁을 겪으면서 역사적 인물 가운데 관중(管仲)을 가장 빈번하게 인용했다. 명(明)에 대한 의리를 중시했던 이들은 관중이 공자 규(糾)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제환공(齊桓公)을 새로운 군주로 섬긴 사실을 비판했다.

반대로 청과 화친을 주장했던 이들은 관중이 실절(失節)했다 하더라도 결국 큰 공로를 세웠던 점을 높이 샀다. 이들은 관중에 대한 평가에서는 극단적으로 대립했지만 조선과 관중의 상황적 유사성, 관중의 행위에 대한 사실판단에서는 거의 일치된 입장을 보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의리(義理) 문제가 중요했다는 말이다.

공자와 맹자는 제환공을 도와 훌륭한 정치를 펼쳐 백성들에게 큰 혜택을 끼친 관중의 공로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그 행적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공자는 재상인 관중이 일반인들처럼 ‘작은 절개’를 지키느라 도랑에서 스스로 목을 매고 죽어서야 하겠는가라고 두둔하면서도, 신분에 맞지 않게 처신한 행적을 들어 ‘예(禮)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맹자는 관중이 제환공을 패자(霸者)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윤(伊尹)과 같은 대단한 인물로 평가하면서도 재임하는 기간 패도(霸道)를 행했던 점에 대해서는 비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호란 이전까지는 공자와 맹자처럼 관중을 평가했다. 큰 공적을 세운 명재상으로서 권도(權道)를 행한 인물이지만, 결과적으로 왕도정치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가했던 것이다. 그런데 두 차례 호란(胡亂)을 겪으면서 관중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다. 당시 조선 지식인들은 조선이 마주한 상황을 ‘치욕을 참고 훗날을 도모하느냐’와 ‘치욕을 당하느니 의리를 지켜 죽느냐’로 인식했기 때문에 관중의 행적 가운데서도 유독 ‘공자 규와의 의리’ 문제에 집중했다. 이 점은 훗날 경신환국(庚申換局, 1680) 직후 노론과 소론의 갈등 과정에서 맹자가 거론한 ‘패도’ 문제로 프레임이 옮겨갔던 것과 비교된다.

감계(鑑戒)와 상고주의(尙古主義), 선례(先例)를 중시하는 태도 등은 유가(儒家) 역사관의 특징으로 손꼽히는 것들이다. 유가는 본래 현실 중심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사건은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기록한 역사를 중시했다.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의 행적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의 행적 가운데 유사성을 가진 것들을 인용한다. 역사적 사실과 경험으로부터 이미 성패가 증명된 선례는 비슷한 상황으로 치환할 수 있는 현실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예측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과거와 미래가 바로 지금인 현실에서 상호 작용한다는 말은 이것을 의미한다.

촛불시민혁명의 원동력은 평등과 공정, 정의였다. 역설적이지만 ‘기회가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프레임은 지금도 유효하다. 적폐를 청산하려는 쪽도 그것에 반대하는 쪽도 결국 같은 프레임 속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평등과 공정, 그리고 정의인지는 진영 별로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촛불시민혁명으로 열어 젖힌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이 평등과 공정, 정의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말이다. 서로에 대한 혐오에 넌더리를 치며 외면하는 대신, 좀 더 이 프레임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좋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