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자립정신으로 제주 정체성 지켜야"
"살아있는 자립정신으로 제주 정체성 지켜야"
  • 김지우 기자
  • 승인 2019.10.30 2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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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억압 맞서 독립 외친 도내 유일 생존 애국지사
포기 모르는 제주인 정신·수눌음 등 계승 조언
본지와 만난 강태선 애국지사가 본인이 실린 제주도정 소식지를 보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김지우 기자

일제강점기 약관의 나이에 민족 해방을 꿈꾸며 독립 운동을 펼친 이가 있다.

일제의 차별과 모진 고문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제주인의 핵심 기질로 뛰어난 자립정신과 높은 민도(民度)를 꼽았다.

주인공은 도내 유일한 생존 애국지사인 강태선 지사(95).

이달 초 본지가 만난 강태선 애국지사는 고향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제주와 후세들을 위한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 일본으로 건너간 소년…차별과 싸우다

강태선 애국지사는 도내 유일의 생존 애국지사로 1924년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태어나 1942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린 나이에 일제의 차별을 몸소 견뎌야 했다.

일례로 학교에서 일본인 학생과 작은 다툼을 했는데 일본인 교사는 강 애국지사는 내버려두고 일본인 학생만 훈계했다. 당시 일본인 교사는 일본인 학생에게 “내선일체를 추구하는 황국신민이 차별을 하면 되겠느냐”며 다그쳤다. 내선일체는 일제가 전쟁 협력 강요를 위해 취한 조선 통치 정책으로 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라는 뜻이다.

강 애국지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되돌아보게 됐다. 이후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서 비폭력 독립운동을 전개한 마하트마 간디의 자서전과 중국 저우푸하이(周佛海)의 ‘삼민주의’ 등을 읽으면서 일제의 통치에 강한 분노를 느꼈고 조국의 독립을 꿈꿨다.

강 애국지사는 동료들과 비밀조직을 결성하고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무력봉기를 계획하던 도중 1944년 일본 경찰에 붙잡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광복과 함께 출옥한 강 애국지사는 공훈을 인정받아 1982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90년 애국지사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 받았다.
 
■ 제주인 기질의 핵심은 ‘자립정신’

온갖 고초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강 애국지사는 제주인의 핵심 기질로 뛰어난 자립정신과 높은 민도(民度)를 꼽았다.

강 애국지사는 “제주인을 다른 지역 사람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게 바로 자립정신이다. 제주인의 자립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다”며 “제주는 땅이 작아 자식을 낳아도 물려줄 게 없었다. 그래서 도민들은 자연스럽게 해외 등 타 지역에 나가 살았고 자립정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인은 옛날부터 지식수준 등 민도가 높았다”며 “4·3사건도 우리의 민도가 높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본다. 제주인의 민도는 다른 어느 지방에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강 애국지사는 제주의 자랑스러운 고유문화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로부터 내려온 산담과 밭담, 사투리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이자 풍습입니다. 요즘 화장문화 확산으로 퇴색되고 있지만 제주인은 아직도 묘지 주변에 산담을 쌓아 조상을 숭배합니다. 또 돌담으로 밭의 경계선을 만든다는 건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제주만의 독특한 풍습으로 반드시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제주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특히 소멸돼가고 있는 제주방언에 대해 강 애국지사는 “제주 사투리는 보통 말이 아니다. 하나하나 의미가 매우 깊고 제주도의 특질이 깊이 담겨있다”며 “사투리를 소홀히 할 게 아니라 연구를 통해 타 지역에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 사라지는 미풍양속…정신과 물질 조화 강조

강 애국지사는 제주 특유의 삼무정신과 수눌음정신이 도시화 속에 사라지는 점에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제주가 자양분으로 삼아왔던 삼무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수눌음 정신도 마찬가지”라며 “제주가 도시화되고 관광도시로 거듭나면서 미풍양속이 없어지고 있다. 살기 좋았던 제주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강 애국지사는 “옛날 제주는 아침저녁으로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했는데 지금은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며 “어디를 가든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자연이 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강 애국지사는 제주가 미풍양속과 자연을 지키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요소와 함께 정신적인 요소를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질만 쫓다보니깐 정신문화가 쇠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물질적인 요소와 함께 정신적인 요소를 함께 추구해 나가야 한다”며 “물질에만 치우치면 우리의 정신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두 가지 요소 모두를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

강 애국지사는 끝으로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제주는 살인사건이 없었던 곳인데 최근 들어 흉악범죄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들이 왜 발생하겠느냐”고 되물은 뒤 “인성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교육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 애국지사는 “수능시험에서 국어, 영어, 수학만 잘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선 안 된다”며 “인성교육도 되기 전에 과목 교육만 시키다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인성교육이 우선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검사국에서 3개월 동안 취조를 받았던 적이 있다. 그때 놀랐던 것이 일본 검사가 나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나쁜 말도 쓰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오히려 나에게 존칭을 쓰면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줬다. 그때 인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강 애국지사는 “우리나라는 물질적인 면에서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면서도 “물질문화와 함께 정신문화가 조화를 이뤄야 진정한 선진국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모든 게 교육에 달려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지우 기자  jibrega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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