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드라마의 ‘시즌 2’를 기대하며
성장 드라마의 ‘시즌 2’를 기대하며
  • 홍성배 기자
  • 승인 2019.10.30 1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대의 음향은 꺼졌지만 아직도 여운이 흐른다. 최근 막을 내린 ‘2019 제주학생 토론한마당이야기다.

제주학생 토론한마당은 올해부터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상대를 물리치면서 올라가는 대회가 아니라 사전 토론 등 참가 학생들 간 협업을 통해 제주교육정책을 제안함으로써 청소년들의 역량을 강화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교육현장에서 느끼고 있는 어려움을 드러내고, 해결방안까지 제안한다는 것은 좀처럼 시도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물론 기존 토론왕 선발대회의 토론을 통한 논리적 사고 배양이라는 취지를 이어감은 당연하다.

이 같은 원대한(?) 이상을 갖고 6월부터 사전 작업에 들어갔지만 처음 가는 길에 대해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어른들이 제대로 된 토론을 보여준 적이 얼마나 있을까. 학교에서의 토론대회라는 것도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이기고 지는 싸움이라는 인식이 더 강한 게 현실이 아닌가. 더욱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대한민국 고교생들이 4차례에 걸친 토론을 준비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에.

걱정과 기대가 교차한 가운데 판이 마련되자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학교의 실험기구가 턱없이 부족하고 다른 학교에 빌리러 다니는 게 서러웠던 친구는 공동과학실험실을 제안했다. 내 의지와 달리 추첨으로 고교에 배정되는 현실에서 00중심학교는 복불복인 셈이다. 주위의 친구들이 사교육에 의존해 헤매던 모습을 본 친구는 예체능 중심의 공립중학교 신설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중학교 시절을 돌아보며 자유학기제보다 직업학교의 필요성을 제시한 친구도 있었다. 제주어 교육의 의무화, 수업 방식의 변화와 수업시간 조정 등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새로운 토론방식은 신기하기도 하지만 어려움을 수반한다. 그동안의 토론대회가 1회성 행사인 반면 수차례 이어지는 사전 토론 아카데미는 준비와 토론, 다시 준비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때문에 참가 학생들은 처음 접하는 방식에 대한 적응과 준비과정의 어려움 등으로 그만두고 싶기도 했고, 혹독한 비판을 받아 속이 많이 상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정책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고민하게 됐고,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의 장점도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용하는 자세에 이어 흥미를 느끼게 됐고, 주장을 좀 더 알차고 풍성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뼘씩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토론주제를 투표로 확정한 학생들은 책 축제가 열린 탐라교육원에서 학생도민과 공유의 시간을 갖고 최종 정책을 제시했다. 이 자리는 특정 학생들을 위한 무대가 아니었다. 토론 아카데미에서 함께 했던 친구들 모두가 토론자, 사회자, 배석자로 역할을 분담하고 협업을 실천함으로써 마침내 정책을 완성해 낸 것이다.

처음 접하는 활동을 무서워말고 도전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좋은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토론은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정책을 위해 갖춰야 할 덕목임을 배웠다.” “처음에는 비판을 듣는 게 무서웠지만 비판도 또 다른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겨낸 아이들은 토론회가 막을 내린 뒤 더 멋진 18살을 마무리하게 돼 행복하다고 했다. 더불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이 같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목말라하고 있지만 제대로 말할 자리가 없고, 그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여름부터 써내려간 각본 없는 한편의 성장 드라마는 이 가을 막을 내렸지만 곁에서 지켜보던 어른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벌써부터 내년에 전개될 시즌 2’가 기대되는 이유다.

홍성배 기자  andhong@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