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기
길들여지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0.29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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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시인·문학박사

나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자연인이라는 말의 어감도 감칠맛이 나지만,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주인공들의 삶에 대한 동경심이 주는 매력에 스스로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그 환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동료 시인 중에 자연 속으로 스며들어 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는 지리산이 좋다며 산 속으로 들어가 살고 있다. 몇 명의 시인이 그를 부러워하며 며칠 지내다 올 생각으로 그곳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하룻밤 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한밤중이 되니 그 집에서 키우는 개가 두려움에 떨면서 방 창문을 긁어대는 바람에 한숨도 못 잤다면서. 자연의 무게와 적막함의 깊이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만했던가. 스스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왔으며, 그랬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온갖 갈등과 절대고독의 아픔이 잉태된 것은 아닐까.

자연을 거부하고 떠나는 순간, 우리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문명은 우리로 하여금 늘 새로운 것을 욕망하게 하고 잠시도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때 사용되는 강력한 채찍은 타인과의 경쟁심이고 후퇴를 용납하지 않는 직진(直進)과 상승의 이데올로기다.

그런 삶 속에서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원형 순환 주기로 우리를 여유롭게 감싸주는 자연의 미덕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잠시라도 뒤로 밀리는 것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의미하고 자신의 존재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직진의 전쟁터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장렬하게 전사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극소수만 승리의 찬가를 부르며 행복감을 만끽한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하다.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하고 기뻐해 줄 존재들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행복감을 같이 나눠야 할 사람들은 이미 경쟁의 낙오자가 되거나 실패자가 돼 좀비처럼 우리 사회의 깊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다.

요즘 좀비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저 좀비야말로 우리 현대인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점점 좀비 사회가 돼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자연을 길들여야하고 더불어 자연에게 길들여지는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자연이 돼야 하고 자연을 내 실존 속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영혼끼리 교감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된다. ‘물아일체’(物我一體)라는 말은 그런 상황에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통해 길들여지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설파했다. ‘길들여지는 것을 수용하지 않으면 진정한 관계 맺기는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는 자꾸 남을 길들이려고만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의지 대로 타인을 길들여서 소유물로 삼으려고 한다. 나만이 정의롭고 옳기 때문에 타인이 나를 길들이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타인을 길들이는 것만큼 타인에게 길들여지는 것의 즐거움과 행복을 애써 거부한다. 아니, 거부하게끔 길들여진다.’

우리의 제도와 법, 사회가 자꾸 그러한 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교는 우리 사회를 통합하는 영혼 교류의 전당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화학적 융합 대신에 물리적 혼합체로서의 삶을 배우고 살아갈 뿐이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실존적 고독과 피비린내 나는 경쟁의 상처를 대물림하게 된다면 우리는 도시 곳곳에서 영혼이 사라져버린 좀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존재들, ‘어린 왕자의 화법으로 얘기하자면 세상을 길들이지못할 뿐만 아니라 길들여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프로그래밍이 된 존재들이다. 타인을 길들이는 것만을 강조하지 말고 자신도 길들여지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좀비를 없애기 위해서는 총과 칼이 아니라 영혼의 교류와 소통, 그리고 행복한 웃음이 필요할 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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