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면서 들은 이야기
버스를 타면서 들은 이야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0.2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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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철 자연사랑미술관 관장

친구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처음 나누는 인사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참 보기 힘들다고 말할 만큼 언제부터인가 서로 만나기가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1970~1980년대는 그래도 하루에 한두 차례 만났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은 여간해서 약속이나 하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마주치거나 만나기 어렵다. 소득이 높이지면서 교통편, 즉 자가용 시대로 접어든 것이 그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얼굴도 잊어버리겠다는 인사말을 할 정도면 만난 것이 얼마나 됐다는 말인가. 하기야 바쁘게 살다 보면 예전처럼 친구나 이웃을 만나기 힘들기도 하겠지. ‘이웃사촌이란 참 정겨운 말이 있는데 이제는 이웃사촌은 간데없고 이웃웬수시대에 산다고 한다.

얼마 전 시내에 볼일이 있어 버스를 타게 됐다. 아침 일찍 버스 정류장에 갔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옆에 앉아 듣다 보니 너무 정겨웠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것이 얼마 만인가하고 귀를 기울여 계속 들었다.

그때 길 건너 쪽에 한 할아버지가 불편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를 본 한 할머니가 아이고, 저 하르방 비 오는디 어디 감신고? 할망 어서 부난 아침이믄 저영 돌아다녀. 저영이라도 댕겨사 걸을 수 있주. 아니믄 걷지도 못 허여.” “무사 아이덜은 어신 처례꽈?” “아이덜은 다 시내 살아 부난 자주 와 점서. 경허난 운동험으로 저영 위험 허게 찻질로 다념쭈게.”

잠시 대화가 멈추더니 한 할머니가 왔다.

성님. 어디 감수과?” “나 병원에.” “어디 아판마심?” “이젠 늙어 부난 사방이 다 아판 약으로 살암쭈.” “어디가 경 아팜수꽈?” “다리영 허리영 아프단 이젠 안 아픈 디가 어신게.” “다리, 허리 아프난 무슨 약초 다련 먹으난 좋아렌 헙디다마는.” “아이고, 경 좋댄헨 약초영 별별 약을 다 먹어봐도 먹을 때뿐 좋아지는 건 아닌 모양이라. 이젠 병원에 강 진통제 타단 먹으난 경해도 밤에 잠이라도 좀 잠서.” “경 아파도 걸어다니멍 운동은 해야마씸. 경도 안허난 앉은뱅이 되컵디다.”

할머니들 이야기를 듣던 한 할아버지가 대화에 끼어든다.

저기 누구네 어멍은 그 약초 먹으난 막 좋아졌댄 헙디다.” “누구네 어멍 말이꽈?” “저기 아랫동내, 무사 큰아들은 서울 살고 족은아들 허곡 사는 그 집 어멍마씸.” “약도 다 지 몸에 맞는 사람이 있는 모양인게. 난 이거 언제라 꽤 오래 동안 먹었주. 경해도 별 차도가 어선게.” “경헌디 저 집이 할으방 쓰러졌덴 헌디 어떵 지냄서. 지금 통 소식도 모르고. 큰일은 엇주?” “병원에서 치료허단 왔덴 헨게 요즘은 동네에서도 잘 안보입디다.” “게메 죽을 때까지 건강허당 얼른 가졈시민 얼마나 좋아. 맹줄 질경 자식덜 못살게 허민 않 좋은디.” “사는 게 지 맘대로 됨수꽈?” “이제 병원에 강 약 타민 바로 올 것꽈 아니민 아이덜 집에 들렷당 올 것꽈?” “가 봐사 알주. 아이덜은 집에 들렷당 가렌 허주마는 시내 가민 돌아다니기 힘들엉 그냥 곧 바로 와불엄서.”

할머니들 이야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버스가 도착했다. 어렵게 버스에 올라보니 그날따라 버스가 만원이다. 자리를 같이 앉은 두 할머니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데 버스의 소음으로 말이 잘 안 들리는 듯하다.

무신거. 쎄게 고르라 못 들으켜.” “성내 사는 똘은 아이가 몇이과?” “우리 막네. 벌써 아들 딸 둘이라.” 전화가 왔다. “으 나여. 어떵허연. 무신거 쎄게 고르라.”

할머니 전화 받는 소리에 버스에 탄 사람들 시선이 전부 할머니한데 향한다. 그래도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통화를 계속하는데 여전히 소리가 잘 안 들리는지 무신거~무신거~” 하다 전화를 끊는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제주대학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버스에 탔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르르 내리자 버스 안이 텅 빈 것 같다.

할머니들 대화에서 요즘 노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건강이 어떤지를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버스를 자주 타고 다니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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