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이 반가우나…
이주민이 반가우나…
  • 제주일보
  • 승인 2016.03.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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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도서출판 장천 대표

얼마 전 틈틈이 마을조사를 다니는 이가 분통을 터트리며 한 이야기다.

올레가 남아있고 오래된 팽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옛정취 물씬 나는 중산간 마을 동네 깊숙한 곳에도 커피집이 한 두 개 없는 곳이 없단다.

그것만이라면 뭐 그리 답답하랴마는 담장 색깔이 유난히 튀는데다, 커피값이 무려 서울의 강남에 비긴다는 것이다.

“동네에 버티고 있으면서 동네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는 거죠.”

주택이야기도 이어졌다. 예전 제주집들처럼 낮고 작은 집이 대부분인 동네 한가운데 사방이 유리로 뚫린 집이 들어섰는데, 그 집을 지나다닐 때마다 기웃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필 마당에 풀장까지 있는 펜션이다보니 동네사람들은 이꼴저꼴 다 보게 된다는 것이다.

“동네사람들의 이목이나, 마을의 분위기에 대해서 최소한의 눈치나 배려는 있어야 하는데, 그게 싹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아요. 아휴 시골 마을에서도 그런 집 한 두 개씩을 꼭 보고 다니려니 이제는 우리가 떠야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심란하다면서 토박이가 마무리 하는 소리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또 다른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이주한 지 4년차인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 내뱉은 말이다.

“이젠 제주에 이주민들이 그만 좀 왔으면 좋겠어요.”

“왜요?”

“제가 왔을 때만 해도 제주는 제주다웠는데, 요 몇 년 사이에 부쩍 망가지는 것 같아서요. 그런 꼴을 보려니 답답하고 속상해요.”

“그렇다고 그만 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떡해요?”

“그러니까요. 막판엔 내가 떠나든가 해야죠 원….”

이주민들이 띄엄띄엄 들어올 때는 언론에서도 제주를 사랑해서 정착하고 싶어한다는 그들을 극진히 귀빈대접을 했던 면이 분명히 있다. 사람 귀한 땅에 일함직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들어오는 게 그리 반가웠던 것도 사실이다.

토박이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제주도의 보물들을 눈 밝게 알아보고 널리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제주도를 선택해 준 그 마음이 반갑고 자랑스러웠다. 무엇 하나라도 도와주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보수적이고 그들 눈에는 폐쇄적으로까지 보이는 작은 마을에 들어가려면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눈치껏’ 적응해야 했다. 기꺼이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결국 마을사람이 되곤 했다.

아무리 글로벌 유목시대라고는 하나, 언제 어디서든 낯선 사람, 낯선 곳과의 만남은 최소한의 수순은 반드시 거치게 돼 있으니까,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제주도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쁘게 변했다한들 그게 어찌 다 이주민들 탓이겠는가.

하지만 물론 아직은 극소수라고 믿고 싶지만, 제주의 이주민들이 점차 그런 적응의 수순을 생략해도 될 번거로운 절차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결과는 온전히 토박이의 몫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이런 게 과도기의 걱정일 뿐이라는 위로가 먼 미래에도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선배 이주민들만 제주도를 사랑하는 것이고, 후배 이주민들은 제주를 해치고만 있다는 말인가.

그게 아닌 것이 분명한데도 선배 이주민은 어느새 토박이의 시선을 닮아가는 모양이다.

토박이와 이주민의 관계 외에 이주민과 이주민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는 단초일 지도 모르겠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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