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정신 이어받은 韓商 기업인
베트남서 실패 딛고 K-마트 설립
연매출 1억 달러 이상 ‘성공신화’
강인한 제주인 DNA가 원동력
제주 감귤 베트남 수출 등 조언
천혜 자연 환경 최고 가치 피력
혈혈단신으로 시작한 타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수십 억원을 투자한 사업은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큰 성공을 이뤄냈다. ‘베트남의 인삼왕’으로 성공한 후 현재 90여 개의 한국식품 매장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한상(韓商) 기업인. 그 밑바탕에는 제주인 특유의 ‘불굴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베트남에서 우뚝 선 자랑스러운 제주인 2세 출신의 고상구 K&K트레이딩 회장(61)의 이야기다.
■ 비 온 뒤 굳은 땅…실패 속 희망을 보다
고상구 회장의 본적은 제주시 애월읍 동귀리다. 대구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친의 고향이며 친인척들이 모두 살고 있는 애월읍에서 방학을 보내곤 했다. 1979년에는 제주로 징집돼 해병대 379기로 군 복무를 마쳤다.
고 회장은 일본에서 선박 부품 제조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부친의 뒤를 이어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한국에서 액세서리 제조 사업을 하다가 국내시장의 경쟁력이 약화되자 2002년 베트남으로 건너갔다.
고 회장은 “베트남에 도착해서 보니 사람들이 굉장히 역동적이었고, 그 모습에 반했다. 마치 1990년대 초반 중국을 보는 듯 했다”며 “그 때 ‘베트남도 곧 중국처럼 성장할 수 있겠구나’란 걸 느끼고 베트남에서 승부를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야심찬 포부와 달리 사업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수십 억원을 투자해 베트남 현지 백화점 한 층을 통째로 빌려 의류, 가전, 이불, 인삼 등 각종 한국 제품을 판매했으나 개업 6개월 만에 실패를 맛봐야 했다. 좌절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는 포기 대신 재도전이라는 희망을 찾았다.
고 회장은 “다른 제품과 달리 인삼은 유독 잘 팔렸다. 그래서 백화점 사업을 정리한 뒤 주저 없이 인삼 사업을 시작했다”며 “이후 하노이와 호치민을 중심으로 인삼 판매 매장 50여 개를 운영하는 등 4~5년 가량 베트남 시장을 독식하면서 ‘베트남의 인삼왕’으로까지 불렸다. 인삼 사업으로 2년 만에 백화점 사업으로 본 손실을 만회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인삼주가 대박이 났다. 베트남에 부동산 붐이 일면서 인허가 수요가 급증했는데 그 과정에서 인삼주가 선물로 인기를 끌었다”며 “값이 비쌌는데도 불티나게 팔렸을 정도다. 당시에는 한국 인삼주가 베트남에서 최고의 선물이었다”며 웃어보였다.
■ 도전 정신, 성공신화 일궈내다
인삼사업으로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그는 2006년 한국식품으로 눈을 돌려 K마켓을 설립했다. 자신의 성공으로 베트남 시장에서 인삼사업이 ‘레드오션’으로 변하자 빠르게 방향을 바꾼 것이다.
현재 베트남 현지에서 K-마켓 점포 88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연매출은 1억 달러를 돌파했다. K-마켓은 2017년 한상기업 최초로 베트남 100대 브랜드에 선정됐고 올해는 베트남 50대 성장 가능 우수 브랜드와 베트남 100대 고객 신뢰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다.
고 회장은 “인삼 사업이 성공하자 경쟁 업체들도 많이 늘어나면서 곧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며 “인삼사업이 잘되고 있을 때 K마켓을 하지 않았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재외동포사회의 권익 신장을 위해서도 앞장 서 왔다. 2014년 제10대 재베트남 하노이 한인회장, 2016년 제2대 베트남 한인회 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인사회에 봉사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지금 나를 만든 건 제주인의 기질과 피”
고 회장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이 강인한 제주인의 기질과 정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나는 제주인의 기질과 피를 물려받았다. 제주는 과거 척박한 땅이었고 물도 귀했는데 이런 곳에서 살아 온 도민들의 기질은 어떻겠느냐”고 되물은 뒤 “끈기와 인내가 상당하다. 제주도민은 도전정신이 강하고 어려운 역경에서도 물러설 줄 모른다. 이 같은 불굴의 의지가 제주인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고 회장은 2014년 당시 운영 중인 물류센터에 불이 나면서 40억원의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그를 일으켜 세운 게 바로 제주인의 DNA라 할 수 있다.
화재 이후 직원들에게 “성공은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우리의 성공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재기에 나선 일화 속에서 불굴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고 회장은 “나락에 떨어질 수 있었지만 결국 다시 일어섰다. 제주인의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개인적으로 제주도민이 해외에 나가면 모두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그만큼 제주인은 도전 정신이 뛰어나고 억척스럽다”고 밝혔다.
■ 제주가치 보전 위한 고민 강조
인터뷰 내내 제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낸 고 회장은 진심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제주 농산품의 해외 시장 확대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고 회장은 “제주감귤이 현재 베트남에서는 수입이 안 된다. 한국 딸기가 적극적인 노력으로 닫혀있던 베트남 수출길을 열었듯이 제주도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베트남은 작은 시장이 아니다. 제주감귤은 베트남을 거점으로 동남아 시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고 회장은 “제주도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싼 물가를 잡고 바가지요금이 없어져야 한다”며 “세계적인 관광지를 가보면 모든 시민이 가이드 역할을 한다. 제주도도 그렇게 됐을 때 축복받은 땅이 더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끝으로 고 회장은 제주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끊임없는 고민을 주문했다. 그는 “제주도가 갖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잘 가꿔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도 중요하지만 제주도의 가장 큰 가치인 자연환경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고민을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상구 회장은…
제주시 애월읍 동귀리가 본적인 제주인 2세로,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나 성광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한국청년회의소 감사, 아태 한국식품 수입상연합회장, 재베트남 하노이 한인회장, 베트남 한인회 총연합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K&K트레이딩 회장과 제18차 여수 세계한상대회 대회장을 맡고 있다.
그동안 농수산물 수출 증대와 재외동포사회 권익 신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과 농축식품부장관상,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김지우 기자 jibregas@jejuilb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