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람이 악행에 빠질 때
선한 사람이 악행에 빠질 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0.1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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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수 제주대 명예교수·논설위원

중국의 공산혁명을 이끌었던 모택동의 이야기다. 그는 청년시절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진학의 꿈을 포기하고 북경대학 도서관 직원 신분으로 혁명서적을 탐독하면서 혁명가로 투신할 뜻을 세웠다고 한다. 비천한 시골 농민의 아들로서 겪었던 기회 상실의 아픈 경험들은 그에게 인도적인 인민해방의 역사적 사명감을 굳히는 배경이 되었을 것 같다. 또한, 40대 혁명가 모택동의 영도로 이루어진 이른바 중국공산당 ‘대장정(大長征)’의 역사는 인민혁명가로서의 그의 영웅심과 자신감을 굳혀주었음에 틀림없다. 1930년대 중엽 중국의 기득권 세력인 국민당 군대에게 쫓겨다니는 비분과 굴욕을 참으면서 중국대륙을 가로지르는 1만 킬로의 거리를 도보로 행군하는 동안 중국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후일에 중국공산당의 승리를 거두는 확고한 기반을 쌓았다고 한다. ‘농민 주축의 인민혁명’과 ‘민폐척결’의 감동적인 이미지는 모택동을 중국 현대사에 우뚝 선 영웅으로 만들었고, 마침내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축출하는 저력이 되었다. 중국대륙을 공산국가로 통일시키던 그 날 농민혁명가 모택동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은, 정의의 편은 일시적으로 약세를 보이더라도 결국은 승리한다는 굳건한 신념이었을 것 같다.
  1960년대에 시작된 ‘문화대혁명’ 기간에 수천만 명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중국 현대사에 통한의 오점을 남기게 된 대재앙은 모택동의 광적인 혁명의지와 그의 인민혁명가로서의 도도한 영웅심이 불러온 것이 아니었을까. 사회원로와 지식인, 종교인 등을 봉건사회 기득권층이라는 죄목을 붙여 무차별 학살하고 강제노역 시키는 일에 동원되어 허울좋은 문화혁명의 하수인 역할을 한 홍위병들의 만행은 인도주의 혁명이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었다. 모택동의 혁명의지가 착취 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신분사회의 굴레에서 해방시킨다는 선의(善意)에서 출발했음을 믿는다 할 때 그 같은 선의와 인도주의가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역사적 사례는 모택동의 경우만이 아니다. 정의구현을 목표로 내건 소련의 공산혁명을 무자비한 독재권력으로 변질 타락시킨 스탈린이나, 광복 후 한국사회를 무참한 살상극과 분란통으로 몰아넣은 좌익운동가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하겠다. 자기가 가는 노선이 선각자적인 인민해방의 길임을 굳게 믿는다는 것이, 자신과는 노선이 다른 대다수 국민의 무자비한 희생을 강요하는 특권의식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정의사회 구현을 기치로 내걸고 시작된 정치혁명이 무자비한 인명살상과 사회질서 파괴로 이어진 예가 많았음은 인간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선량한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 그 사람의 부주의함이나 무지함 때문이라면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는 자신의 능력의 부족함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선량한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자기 능력이나 지식이 남보다 뛰어난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경우라면 개선의 가망은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선량한 마음이 자기과신에 빠지면 얼마든지 잔악행위를 범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인간역사의 역설적인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4·3사건 당시 인민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이나 이덕구가 지녔던 민족해방의 정의감과 투지가 너무 강고했다는 것이, 제주역사의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는 단초가 되었다면 이는 정녕 ‘선한 사람의 악행’이라는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여러 가지 들리는 말들을 종합해 볼 때 그들은 분명히 선량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지식과 능력이 뛰어났으며, 신념이나 정의감, 용기 또한 대단한 인물들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들의 항쟁의지가 낳은 파괴와 살상의 과격 수단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나타난 결과를 냉정하게 돌이켜 볼 때 그네들의 투쟁적 신념이나 용기가 조금 약한 것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회한의 상념이 든다는 것이다.
  무릇 정치혁명이라고 하면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일거에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과격한 수단과 방법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파괴는 혁명의 꽃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혁명론자들의 영웅숭배적인 자기과신은 위험천만이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게 나올수록 자신의 영웅심리를 더욱 부풀리게 되고 역사적인 소명감과 투쟁열기에 불을 붙일 수도 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의 이른 바 혁명적 진보론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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