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일보 기획] 낡은 목판에 남겨진 ‘새마음 갖기 운동’
[제주일보 기획] 낡은 목판에 남겨진 ‘새마음 갖기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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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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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의 길(1979)

박근혜 전 대통령 첫 번째 저서
새마음 운동 발대식 격려사 모음집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각종 저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각종 저서.
새마음 먹기 운동 나무판 앞면.
새마음 먹기 운동 나무판 앞면.

몇 달 전 고재(古材)와 항아리 등을 주로 파는 제주대 근처 단골집에 지나던 길에 우연히 들렀다. 주인장은 물건 수집 차 출타하시고 동생 분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특별히 목적한 바가 있어서 간 게 아니어서 평소와 같이 넓은 가게 안 이곳저곳을 뭔가 새로 들어온 게 없나 둘러봤다.

그러다 넓은 나무판을 온통 검은 색으로 칠하고 안팎에 은색 페인트로 글자를 잔뜩 써 놓은 모양이 특이한 판재가 눈에 띄었다. 군데군데 벌레가 먹어서 좀 안 좋은 상태였지만 세월이 느껴지는 목판에 쓰인 글자들에 급(?) 호기심이 갔다.

바로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가격을 문의하니 특이한 형태라 바로 기억하시고, 나무도 잡목이고 벌레가 많이 먹은 놈이니 그냥 니 해라하신다. 평소에도 경제적 가치는 없어도 자료적 가치는 있는 물건들을 종종 덤으로 주시는 지라 냉큼 감사를 표하고 얼른 가져왔다.

나무판에 덮힌 흙과 먼지를 털어내고 찬찬히 살펴보니 글의 제목이 새마음 먹기 운동이었다. 그 내용은 . 이 골목길을 비롯하여 한림거리에 소변을 보거나 담배꽁초 밋 휴지나 과자봉지를 버리지 맙시다 . 버리는 자 발견한 사람은 꼭 주어가드록 권합시다 . 버리는 자나 버리는 거 보아도 줍도록 권고하지 아니하는 자는 벌칙금 四千(사천)원을 당국에 내어야 할지라 . 뻐스, 차를 탈 적에는 한줄노 서서 한사람식 오르도록 합시다였다.

그 때 갑자기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한 때는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다가 지금은 영어(囹圄)의 몸이 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그 분이다. 그녀의 첫 번째 저서 제목이 새마음의 길’(구국여성봉사단, 1979)이다. 그 책이 출판되기 전 1977119일 발족된 한 단체(본부장 崔太敏)에서 벌인 게 바로 새마음 갖기 운동이었고, 그 저서는 전국 도민 궐기 대회나 각급 학교 발대식에서 했던 그녀의 격려사를 모은 것이다.

충효의 정신을 새마음 갖기 운동의 기초로 삼고 우리나라만이 할 수 있는 정신 순화 운동의 특징’(경상북도 도민 궐기 대회 격려사)이라고 했던 거창한 운동인데 이 목판에 쓰인 그 실천 항목이 예상보다 소소한 게 이상했다. 찾아보니 그녀가 전국 도민 궐기대회의 맨 마지막 순서로 참여했던 1978년 제주 궐기 대회에서 길가에 떨어진 휴지 한 장을 보았을 때에도 줍지 않고는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데 그 원인이 있었다.

그 판 뒤에는 북제주군수, 제주경찰서장, 蘇理聲(소리성) ()’이라 적혀있어 당시 이 판을 제작한 것이 관()에서 주도한 건지 아니면 한림에 살던 한 도민의 개인적인 성의표시였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그녀가 언급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이렇듯 목판에 써서 게시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녀의 저서나 이 목판에 쓰인 내용은 지금 보아도 나쁜 게 없다. 다만 그녀도 흐르는 물은 부패하지 않지만 아무리 맑았던 물도 한 곳에 정지하여 전진이 없으면 상하고 말 듯한결같이 실천되려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여야만 할 것’(충청북도 도민 궐기 대회 격려사)이라고 언급했듯이 실천이 중요한데, 말이 쉽지 그 게 가장 힘들다. 그녀도 그걸 못 했다.

박근혜자서전(위즈덤하우스 2007)에 실린 새마음갖기운동의 횃불 휘호 앞의 박근혜 전 대통령.
'새마음의 길'에 수록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항몽순의비 참배 사진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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