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경험과 광장정치
성공의 경험과 광장정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0.0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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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성공의 경험은 참 중요하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이면 커다란 난관도 극복하고 불가능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는 구력이 생긴다.

시위나 집회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모두를 깜짝 놀래 킨 촛불집회와 이를 세 대결로 끌고 가고픈 태극기집회를 보면서 성공의 경험이 사람들을 참 많이 바꿔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3년 전 탄핵을 통해 촛불집회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중대한 승리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필요하면 촛불을 들어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서초동의 촛불집회를 통해 드러나지 않던가. 성공의 경험이 반영된 자신감이.

반대로 탄핵 이후 보수의 입장을 잠시 생각해 보면 자괴감에 휩싸였으리란 추측을 해 본다. 보수의 집회는 관제 데모가 주를 이뤘듯 시위를 통해 무언가를 획득한다거나 요구를 관철해 본 경험을 거의 갖지 못 했다.

사회의 병폐라 여겼던 좌익에 의해 탄핵과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사실을 목도하면서 그들은 광장의 힘을 알게 됐고, 시위와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광장정치를 방법론으로 택했다.

처음에는 노인네들의 태극기 부대나 일당에 이끌려온 찌질한 집단으로 치부됐지만, 개천절의 집회는 어쩌면 나름 자신감의 회복을 가져다줬을 것이다. 이른 바 시위의 기술을 습득해 나가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개천절의 광화문집회를 통해 태극기집회, 지역 동원, 개신교 집회 등 입장은 달랐지만 세 과시의 일차 목표는 달성된 듯 보였다. 조금만 더 하면 꽤나 잘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까지 갖게 한다.

물론 터무니없는 헌금 강요나 성조기, 일당에 대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어이없어 보이지만, 보수 역시 본인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광화문에 가득한 인원을 봤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했을런가. 이 같은 집회를 계속하면 장관을 사퇴시키고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대미문의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보며 그 숫자에 놀라면서도 뭔가 개운치 않음이 느껴진다.

우선 검찰 개혁이 국민의 의견을 찬반으로 갈라놓아야 할 만한 문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너무나 당연하게 밀고 갔어야 할 문제인 것이 아닌가. 시기적으로 총선을 코앞에 두고 검찰 개혁이 진영 싸움의 이슈가 되는 모양이 불편하다.

검찰 개혁이라는 목표가 조국 장관의 퇴진과 문재인 정부의 실정 주장과 연결되면서 진영 논리 중 어느 것이 더 설득력을 갖느냐는 선택 국면이 되고 말았다.

검찰 개혁을 정권 초기부터 좀 더 세게 밀어붙이지 못 한 결과 때문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머문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검찰과 대결하는 국면은 솔직히 모냥빠진다. 보수에 시위의 기술을 트레이닝시키는 상황과 진영 싸움으로 몰고 가는 빌미를 준 것 역시 탐탁지 않다.

야당의 입장에서 보면 호기를 잡은 셈이다. 6개월 남은 총선을 앞두고 총선 정국으로 국면 전환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통산 3개월이나 100일 전부터 뜨거워지는 총선이 장외 집회의 기술 덕에 6개월로 늘어난 것이리라. 무엇보다 압도적으로 불리할 듯 보였던 정국을 뒤엎을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

검찰 개혁과 진영 대립이라는 광장정치는 이미 강을 건넜고,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격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개혁이 국민들의 선택의 대상이 된 정치지형이 그래서 더 아쉽기만 하다. 검찰 개혁이 광장정치의 메인 이슈가 된 이상 결과를 만들기는 하겠지만, 당연한 과정이 선택사항이 돼버린 정국으로 인해 거대한 촛불집회에 대한 탄성과 동시에 못내 불편한 마음은 여전히 남는다. 검찰 개혁은 당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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