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무대왕과 12사우(祠宇)
흥무대왕과 12사우(祠宇)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0.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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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준 가락회보 편집장·논설위원

지난달 초쯤 경주시 충효동 송화산 기슭의 흥무대왕릉을 참배했다. 서쪽을 향해 네번 절했다.
​능침(능소) 앞에는 두개의 능비(陵碑)가 마주보며 세워졌다. 하나는‘태대각간 김유신지묘’이고 ​다른편은 ‘개국공순충장열흥무왕능’이다.
김유신의 선조 세계도(世系圖)를 살펴본다. 가야국이 마지막 10세 양왕에 이르러 인접 신라와의 분쟁이 ​잦았다. 결국 신라 법흥왕 군대의 침공을 받아 양왕은 출전했으나 군사와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여 나라를 신라에 선양(532년)했다.
​가야는 창건 500여 년만에 문을 닫았다. 신라는 양왕의 세 아들 노종, 무득, 무력을 신라 경주에서 지내도록 ​배려했다. 그들은 왕족에 준하는 각간(角干)이 되었다. 세 왕자는 가야의 11세손이다. 무력의 아들 서현은 12세손이며, 그 아들 김유신은 가야국 창건 김수로왕의 13세손이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어 연마를 거듭한 후 삼국통일의 원훈(元勳)으로 청사를 빛냈다. 신라는 그에게 태대각간의 작위를 주었다. 문무왕 13년(673년), 장군은 79세에  별세했다. 당시 ‘태대각간 김유신묘’로 봉안했다. 장군이 서거후 162년에 이르러 신라 흥덕왕 10년(835년)에 그에게 ‘순충장열 흥무대왕’으로 추봉했다.
왕위계승자가 아니면서 왕으로 봉함을 받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대왕 신분으로 상승함에 따라 능묘도 왕릉의 의물(儀物)을 갖추게 되었다. 12지신상이 조각된 호석으로 장치되어 있는 원형 토분으로 조성됐다.
김수로왕의 후손들(김해 김씨, 허씨, 인천 이씨)은 삼국통일의 주역이요, 가야종중을 빛낸 흥무대왕 김유신을 중시조(中始祖)로 받든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경주의 명산 송화산 아래 건물 금산재에서 능제(陵祭)를 모시다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면서 1992년 9월에 전각을 세워 숭무전(崇武殿)이라 하고 봄, 가을에 후손, 지역유림 및 지역주민들이 모여 제향을 모신다.
전각안에는 흥무대왕과 왕후 계림김씨의 위패가 봉안되었다. 관리실에는 참봉과 직원이 상근한다.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역사적인 사적지(제27호)는 천혜의 관광명소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주차장은 늘 붐빈다.
​사당이나 사우는 신주(위패)를 모신 집으로 비슷하다. 김유신장군은 삼국을 통일하기위해 군사를 이끌고 한강 이남지역의 곳곳에 병영(兵營)을 설치하면서 상대 군대와 싸워 가는곳마다 승리했다. 지방의 가야후손들과 유림들은 헌성금을 모아 김유신장군의 훈적지(勳蹟地)에 사우(건물)를 세우고 이곳에서도 춘, 추로 제례를 올리고 있다.
9개 시도에 산재한 ‘12사우’다. 울산시  중앙로의 은월사, 경남 양산 하북면 취서사, 경북 경주서악서원, 경북 군위군내 제동서원, 강원도 강릉 화부산사, 전북 부안군 개암사, 경기 화성 금산사, 경남 진주의 남악사, 충남 부여 부풍사, 광주광역시 북구 장열사, 전북 완산구 완산사, 충북 진천의 길상사 등이다. 12사우의 졔향에는 지역 지방단체의 장이 제관 가운데 초헌관을, 아헌관은 유림이, 종헌관은 가락후손이 맡는다.
12사우 가운데 서악서원(경주), 금산사 (경기화성), 남악사(진주)에서는 유학의 거두 설총, 최치원 선생의 위패도 함께 봉안하여 제례를 봉행한다. 아쉬운 점은 12사우는 흥무왕의 위패를 봉안하여 봄, 가을로 제례를 모시는 일은 똑같은데, 서악서원, 길상사, 화부산사, 금산사, 남악서원 등 5개 사우는 지방문화재나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보수비와 제례비용 등을 지원받고 있으나 나머지 사우는 ‘미지정’ 상태여서 종친회나 자치단체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12사우는 그 지역사회의 역사와 정신적 구심점이기 때문이다.
후손들은 숭무전을 비롯하여 전국의 12사우 제례일에 참제하면서 김유신장군의 ‘멸사봉공(滅私奉公)’ 정신을 흠모하면서 개인을 희생하여 공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짐한다.
김유신 장군의 전적지에 세운 12사우의 제례 일에 지역의  후손, 유림 그리고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여 통일대업을 이룩하여 민족의 자주성을 확립한 흥무왕의 정신을 전승해야 할 것이다.
김유신 장군은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가는 길에 집 앞에 이르러 떠온 물을 마시면서 “아! 우리집 물 맛이 그대로구나” 우물 재매정(財買井)은 경주시에서 문화재로 가꾸고 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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