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0.06 1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환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찬란하게 꾸며진 행사장의 주 무대에서는 모 국악단의 공연이 이어지고 있었다. 주최 측의 무성의로 우리 아이들은 그 찬란한 무대를 대신해 급조된 천막에서 다음 순서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너무도 대조적인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솟아 올랐다. 서러움의 눈물을 보일 수 없어 참아내자니 이젠 심장이 폭발하는 듯했다. 엄청난 용암이 가슴 아래로부터 끓어올라 목을 타고 입 밖으로 불을 뿜어 낼 것만 같았다.

화북윈드오케스트라가 화북동 유배문화제에서 공연을 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비가 왔고 공연 3시간 전에 연습실에 모여 준비를 하고 있자니 담당자의 걱정스러운 전화가 왔다. 비가 오는 데 공연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아이들은 공연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렵게 모인 50여 명의 아이를 보니 취소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그냥 돌아가야겠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고 나 또한 어떻게든 공연을 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현장 상황을 직접 보는 것이 나을 듯해 현장을 찾았다. 설치된 천막이 족히 20여 동은 돼 보였다. 단지 공연자들을 위한 천막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화북윈드의 공연을 위한 무대는 없었다.

쟁쟁한 공연단체도 부르고 제법 예산을 들여 기획한 진짜 문화축제였다. 주최 측의 입장이 이해가 됐다. 그 입장에서 우리 화북윈드 공연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공연이었다. 주최 측 프로그램의 형식으로 보면 화북윈드의 공연은 우리 동네 버스킹이란 이름으로 우리가 하고 싶어 신청한 공연이고 출연료 같은 예산이 필요 없는 공연이었다.

어떻게든 공연을 해보려고 비를 맞으며 바삐 움직였다. 본 무대는 아니었어도 비를 가리기 위한 천막을 쳤고 아이들이 하고픈 공연만 하고 가면 된다고 자위했다.

막상 마이크를 잡으니 참았던 말들이 튀어나왔다. 돈 들여서 하는 행사에서 정작 동네 아이들이 하는 공연은 무대 밖 구석에서 하든지 말든지 신경을 안 쓰니 다시는 공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삼춘들 제주도에서 제일 잘하는 우리 아이들 마지막 공연 잘 보시라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부녀회가 운영하는 천막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씩 먹고 가라며 식권을 준다. 그걸 받으면 진짜 불쌍해질 것 같아 자존심 때문에 받지 못 했다. 우리 아이들 밥은 내가 사줄 것이다. 도민 혈세로 쓰는 비용에 대해 내가 한 마디라도 할 수 있으려면 난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삼춘들이 오셔서 자기 동네를 그렇게 숭보면 안 된다고 하셨다. 지역 의원도 기존에 하던 대로 더 쉽게 할 수도 있었지만, 문화제 행사로 동네 축제로 만들어 잘하려고 한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한다.

행사장에 오신 삼춘들이 많이 행복해 보였다. 화북윈드 공연에도 열심히 호응하고 박수치셨다. 이렇든 저렇든 축제는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하다.

동네 무당 안 알아준다며 축제에 굳이 몸값 비싼 연예인 불러야 할까? 우리 동네 예술가는 감동이 없고, 유명 예술가는 감동이 많을까?

결코 아니다. 스토리의 문제다. 사람을 끌어모으려는 욕심에 그럴싸한 공연단체를 출연시키지만, 사람은 흥이 나는 곳에 모이고, 볼거리가 있으면 모인다.

문화의 콘텐츠가 경쟁력이다. 제주의 정서가 담긴 우리만의 문화예술, 누가 더 잘 표현할까?

독창적인 스토리와 우리만의 색은 지역 예술가들이 만들어낸다.

야외에서 하는 화북윈드 공연에도 관객은 앉을 자리가 부족할 만큼 모인다. 유명인으로 사람을 모으고 이벤트 회사만 좋은 축제는 이제 그만하자.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