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대립, 그 언어적 해법에 대하여
첨예한 대립, 그 언어적 해법에 대하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0.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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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경 제주한라대 교수·논설위원

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최근 극단적 분열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조국 사태논란이 그러하고 최근 한일 관계, 여전히 진행 중인 중미 무역전쟁 등이 그 예다.

어느 것 하나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양측의 분열과 대결의 구도 속에 첨예한 대립이 진행 중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유명한 중국의 전쟁 이론가이자 전략가인 쑨삔(孫斌)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전술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아마 이 말은 피아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기초로 사고의 공유를 끌어내는 것이 최선의 문제 해결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이것은 나아가 대화의 구체성과 진정성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작금 언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깊이 음미해야 할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언필칭 개혁’, ‘안정’, ‘민주’, ‘정의’, ‘자유를 외치며 끝없는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냉정한 관객들에게 공감은 찾기 어렵다.

과연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는 구체성과 진실성이 없이 자국(自國) 또는 자당(自黨)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한 편향된 해석에 기대어 일방적 언사를 늘어놓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를 이해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결과는 힘에 의한 해결만이 있을 뿐이다. 세상이 힘들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어느 때보다 타인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신념을 납득시켜야 할 지금 우리 언어의 형식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우선 피아 간의 대화는 말로 이뤄진다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로서 언어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대화의 양 주체가 이해할 수 있고 공유하는 전제하에서 정확하고 구체적 개념과 내용을 담아야 한다.

물론 상대방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다해야 자신도 상대방에게 동일한 기대를 할 수 있다는 점은 상식이다.

둘째, 질문과 대화는 정직하고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말은 대화의 시점뿐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고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타인,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에 올 먼 미래의 인류에 대해서도 떳떳한 내용이어야 한다.

따라서 대아(大我)를 늘 명념하고 소아에 집착하는 이기적 언사는 버려야 마땅하다.

특히 정치와 교육에 관계되는 언사는 당대만을 염두에 둘 일이 아니고 먼 미래를 함께 사유하는 궁극적 원견(遠見)을 담아야 한다.

셋째, 질문과 대화의 내용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설령 문서화하지 않은 내용일지라도 언약은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

실천이 따르지 않은 미담은 공담(空談)이기 십상이고, 근본적으로 실천될 수 없는 언약은 위언(危言)이며 피아 간의 신뢰를 훼손한다.

따라서 신()을 향한 고해성사가 아니라면 말은 공개해 미담은 미담대로 새기고 언약은 언약대로 지켜가도록 모든 당사자와 함께 다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원칙이 하나 있다. 말하지 않을 권리는 언제나 존중돼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로 이미 중요한 의사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인해 보겠다라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속되고 낮은 차원의 핑계와 천금 같은 침묵이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모름지기 사람 간 의사소통이 순조롭기 위해서는 그 절차적 합법성을 제외하고라도 최소한의 절제된 언어와 그 진정성만은 늘 담보돼야 하는 것이다.

어디 이 점이 지금의 특정한 일에 그치겠는가마는 적어도 올해, 엄정하고도 공손한 말이 오가는 세상에서 지상의 길을 가는 우리의 삶이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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