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털과 가시
말의 털과 가시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9.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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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 가운데에서 오직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또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하고 문화를 창조해 낸다. 그만큼 인간의 삶에 있어서 언어라는 것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라는 확실한 증거라 할 수 있다.

말에는 말의 깃이 있다. 그 깃은 일 수도 있고 가시일 수도 있다. 말하는 사람은 부드러운 털이라 여기고 말을 했을지라도 듣는 사람은 가시로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슴도치의 가시도 어미의 처지에서는 부드러운 털이라 여길 수도 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함함하다면 기뻐한다라는 속담이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함함하다는 말은 털이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는 우리말이다)

말의 위력을 표현하는 속담도 부지기수이다. ‘세 치 혀가 사람을 잡는다라는 말은 세 치밖에 안 되는 혀를 놀려 말을 잘못 하면 타인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나 목적과는 상관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의 처지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말의 결과는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기에 언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결과 무늬가 그대로 반영된다고 말하곤 한다.

말은 글과는 달리 발화 상황에 따라 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기에 말을 할 때는 상황과 듣는 사람의 정서적 상태, 그 순간의 분위기를 세심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 근무하다 보니 상당히 많은 학생을 상대하게 되는데 당연히 그들에게 다양한 말을 하게 된다. 수업 시간에는 교과 내용뿐만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삶의 방식과 철학에 관한 얘기는 물론 때로는 실없는 농담을 건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진지한 얘기를 하는 경우는 그다지 상관이 없지만, 농담하는 경우는 매우 조심해야 함을 깊이 경험하고 있다. 큰 의미 없이,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건넨 말에 몇몇 학생들이 심리적 상처를 호소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말을 한 나로서는 뜻밖의 상황에 난감한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한 것은 학생들이 심리적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나는 분명히 학생들에게 큰 잘못을 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선의의 의도와 목적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상처를 받은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

이렇듯 말은 화자 중심이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청자가 중심이 된다. ‘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라는 말은 핑계이고 변명에 지나지 않을 수가 있다. 듣는 사람이 털이 아니라 가시로 여기고, 그 가시에 상처를 입었다면 말을 잘못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아이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는 일에 매달려온 나로서는 다시 한 번 말의 위력을 깊이 새기고 있다. 이를 계기로 말의 결과 무늬에 대해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을 터득하는 중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 말에 달린 털이 가시가 되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다듬고 있다.

다언다실’(多言多失)이라는 말이 있다. 말이 많으면 잃는 게 많다 혹은 실수가 잦다는 말이다. 또 다른 아픔을 겪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말을 절제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함께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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