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졸업’을 위해서
아름다운 ‘졸업’을 위해서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09.2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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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사라봉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뉜다.
제1그룹은 사라봉뿐만 아니라 별도봉까지 오르내리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 다음엔 사라봉 팔각정까지 오르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
마지막 그룹은 나이가 많고 힘이 부쳐 사라봉 입구 쉼터에서 머무는 사람들이다. 이 쉼터에서 만나 옛날 이야기를 하는 제3그룹 사람들은 대부분 80대들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 사람이 보이지 않게 되면 누군가가 묻는다.
“그 분이 요즘 안 보이네요….”
그를 잘 아는 사람이 답한다.
“졸업했어요….”
이 곳 사라봉 사람들은 죽음을 ‘졸업’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죽음을 말하는 모트(mort, death)의 원래 뜻이 ‘굴욕’이라고 하는 데 사라봉 사람들이 만들어낸 ‘졸업’이란 말이 참 아름답다.

▲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작가 박완서가 생전에 늘 했던 일갈이다. 그는 말년에 늙은이 얘기를 많이 썼다. 자신의 작품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1998)’ 서문에 이렇게 썼다.
“여기 수록된 단편들은 젊은이들 보기엔 무슨 맛으로 살까 싶은 늙은이들 얘기가 대부분이다.”
그의 단편들은 겉으로 초라하게 보이는 노인들의 삶 속에 깃든 연륜(年輪)을 드러낸다. 세월의 난바다를 헤치며 세상살이의 내공을 쌓아온 과정을 따스하게 보듬는다. 그리하여 인생은 늙도록 살 만한 것이라는 주제를 웅숭깊게 전한다.
그런 점에서 ‘너무도…’는 늙음에 대한 송가(頌歌)다.
이 작품집이 나온 1998년은 IMF 외환위기 때로 한국 사회 전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던 시기였다. 무엇보다 고령화 시대의 불안감이 증폭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담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삶의 온기와 희망을 전하고자 한 것이 당시 원로 작가였던 박씨의 의도가 아닌가 싶다.

▲지난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인구 10만명 당 사망자수를 말하는 연령표준화 사망률이 제주도가 326.1명이었다. 전국 평균(322.6명) 보다 높다.
특히 제주지역 자살 사망률이 전국 시·도 중 충남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서 인구 10만명 당 연 27.3명꼴이다.
이 가운데는 노인 자살이 많다.
제주 노인들이 정작 제주섬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더 서글픈 것은 이런 소식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숫자로 확인한 것에 불과한 탓일까. 노인 자살은 질환, 경제적 궁핍, 고독, 가정불화 등이 주요 원인이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진 않았지만 노년의 시간을 행복하게 누리지 못하고 그저 잔명(殘命)으로 힘겹게 버티는 이들도 많다. 

▲박완서의 ‘너무도…’가 나온 지도 20년이 지났다.
다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너무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사망률이 높고 노인 자살이 많지만 그런 건 숫자일 뿐이라고.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다고….”
여전히 노인 예찬의 주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요즘 사라봉 제3그룹 사람들은 쉼터에 못 간다고 바로 졸업하지 않는다. 거길 못 가더라도 ‘신산공원’엘 간다.
‘피사의 사탑’ 할아버지도, 뒷걸음질하는 ‘난닝구’ 할아버지도 ‘졸업’은 아직 멀다 하고 매일 아침 6시 젊은이들과 신산공원에서 국민체조를 한다.
이를 보며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다.
앞 세대보다 더 길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 세대의 노년에 과연 ‘살맛’을 누리게 될지, 또 아름다운 ‘졸업’을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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