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고 14명의 도전 “17살 우리가 책을 내요”
한림고 14명의 도전 “17살 우리가 책을 내요”
  • 홍성배 기자
  • 승인 2019.09.25 1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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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나도 저자다!’-(1)한림고 동아리 ‘한글(한림글쟁이)’
한림고 ‘한글(한림글쟁이)’ 회원들과 김현지 교사가 현재 쓰고 있는 책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의 책을 갖는다는 것은 일종의 로망이다. 웬만큼 글을 쓰는 사람도 쉽사리 용기가 나지 않아 시작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도내 교육현장에서 10대 청소년들이 겁 없이(?) 도전에 나서 눈길을 끈다. 책 읽기를 넘어 책 쓰기에 나선 우리 청소년들의 유쾌한 도전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 주>

 

내 책을 갖는다고? 책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질까.’

다은이는 올 1학기 초 책 쓰는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졌다. 원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서슴지 않고 동아리 문을 두드렸다.

평소 소설을 좋아하고 독서학원을 다녔던 은수도 마찬가지다. 읽는 것만이 아니고 책을 출판한다는 설명에 책을 만들어서 갖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기대감이 가득해졌다.

한림고등학교(교장 문홍철) 동아리 한글(한림글쟁이)’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관심과 담당 교사의 달콤한(?) 유혹,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일단 아무 동아리나 들어가 보자 하는 생각 등 다양한 사연을 갖고 굴러가기 시작했다. 물론 대학입시에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함께 했다.

한글멤버들은 그동안 자기 표현과정, 시와 에세이 쓰기, 43과 관련한 글쓰기 과정을 거쳐 드디어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각자가 정한 장르의 글쓰기, 저술의 단계를 맞은 것이다.

각자가 고심하며 정한 주제는 천차만별, 그야말로 개성시대다.

일본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는 은수는 그의 소설 붉은 손가락을 가지고 그 결말을 바꾸느라 머리를 짜내고 있다. 혜우가 평범한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그려나가고 있는 동안 다은이는 가족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가람이와 은지는 판타지 소설에 몰두하고 있고, 연우의 관심사는 역사 스릴러다.

한림고 책 쓰기 동아리 ‘한글(한림글쟁이)’.

소설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승찬이는 대박을 주제로 한 에세이 쓰기에 나서 한탕주의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현주는 또래 아이들이 즐겨 입는 후드티가 주제다. 남들과 다른 옷을 소유하려는 욕망에 주목한 것이다. 소현이는 하얀(화이트)’을 주제로 시와 에세이를 쓰고 있고, 경흔이는 과거 자신의 이야기를 다듬고 있다.

그러나 내 책을 향해 가는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자리에 앉자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할 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은이는 당시를 막막했다는 한마디로 정리하며 막상 책을 쓰게 되니까 작가들은 정말 필력이 좋은 사람들이구나 하는 존경심이 생기게 됐다고 말했다.

승찬이와 가람이는 소설이라는 특성상 분량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심 중이다. 자기 생각을 써야 하는데 우선은 분량을 늘리는 것이 힘들고, 양을 늘릴수록 이어지는 부분이 매끄럽지 못해 고민이다. 어쩌다보니 중국 한무제 시대를 다루고 있는 연우는 과거 황제의 어투와 의복 등 시대 상황을 고증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결국 좋아했던 소설을 꼼꼼하게 다시 읽으며 대화체를 공부하고, 좀 더 알맞은 단어를 찾기 위해 멀리했던 사전을 뒤적이는가 하면 쓰고 지우는 과정이 쉼 없이 반복된다. 연우와 은지, 혜우 등의 요즘 일상이다.

혼자 하는 어려움을 공동으로 해결하려는 경우도 있다. 같은 반 친구인 하늘이, 유진이, 효린이는 동성애를 주제로 해 함께 책을 내기로 의기투합했다. 사실 이들은 글쓰기가 필요하고 잘 쓰고 싶은데도 자신감이 없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동아리 소식을 듣고 어려운 발걸음을 했다.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만드는 게 어렵지만 함께 하니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며 자신들도 반드시 책을 완성해 내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의지이자, ‘연대감이 목표에 다다를 때까지 도피할 수 없는 방어벽인 셈이다.

한림고 ‘한글(한림글쟁이)’ 회원들이 창의체험활동 시간에 글 쓰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동아리 친구들은 한걸음 한걸음이 힘들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의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다른 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작가의 생각을 더 느끼게 됐다는 점이다. 경흔이는 글쓰기 능력이 향상되고 표현이 다양해졌다고 소개했다. 장래 글쓰기를 업으로 삼겠다는 친구도 있다.

자신감을 얻은 것도 소득이다. 소현이는 처음엔 마지못해 참여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도 있고 되레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글쓰기에 관심이 없었지만 담임교사의 권유로 동아리에 들어온 석현이는 디자이너가 꿈이다. 이번에 패션을 주제로 직접 글을 써보면서 불투명했던 꿈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혜우도 글을 쓰면서 요즘 들어 자신의 진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시간을 쪼갠 이들에게 글쓰기는 꿈 많은 고교시절 친구들과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자, 남들이 쉽사리 접해보지 못하는 놀라운 경험이다. 11월 말이면 책이 나온다. 책 표지까지 직접 저자인 학생들이 맡는다.

은지가 말했다. “17살에 불과한 우리가 책을 내요!”

 

홍성배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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