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집’ 말을 했다간
‘취집’ 말을 했다간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09.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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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랬다간 “장관 물러나라”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주택 청약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77년에는 ‘영구 불임(不姙) 시술’ 여부가 국민주택을 공급받는 우선 조건이었다. 당시 각 신문(1977년 9월 15일자)을 보면 ‘국민주택을 공급받으려고 영구 불임 시술을 하는 사람들로 보건소가 미어지고 있다’는 기사가 사회면 톱을 장식하고 있다.
어느 70대 부부는 보건소에서 불임시술을 해주지 않자 건설부를 방문해 “불임 시술을 안 해주는 데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상당한 논란을 겪었지만 출산 억제를 위한 이 같은 규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20년인 1997년에 이르러서였다. 1998년부터는 보건소에서 공짜로 주던 먹는 피임약도 없어졌다.

▲이제는 아이를 낳으면 정부가 돈도 주고 주택 혜택도 준다는 세상이다. 그렇게 아기를 낳으라고 해도 출산을 기피하면서 지난해 기준으로 제주지역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이 32.76세로 높아졌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33세를 넘어설 것이다.
이런 고(高) 출산 연령과 저출산 원인으로 만혼(晩婚)이 지적되고 있다.
예전에는 늦게 결혼하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활동적이고 치열하게 살아가며 결혼보다 취업을 중시하고 사회적인 성취를 더 우선시한다. 흔히 노총각, 노처녀의 기준을 만 ‘33’세로 치는데 만혼의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하지만 노총각, 노처녀들도 ‘33’이라는 숫자 앞에 조금씩 작아지는 자신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결혼이 늦은 남녀를 만나보면 ‘천태만상’이다.
먼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경우가 드물다.
결혼 중매인의 말을 들어보면 결혼 시기를 한참 놓친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노총각, 노처녀들이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제게도 맞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제 정말 마음 비웠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희망이 보이면 “이왕이면…”이라며 조건을 하나씩 늘어놓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도 있다.
50대 중반의 노총각에게 40대 후반의 노처녀를 소개했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하는 말이 “(상대가) 너무 늙어서…” 했다던가. 노총각들은 자신의 나이를 종종 잊는가 보다. 30대 초반에는 2~5세, 30대 후반에는 5~7세, 40대에는 8~15세, 50대에는 심지어 20세 이상 어린 여성을 원한다니까.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2세 건강을 위해서는 엄마라도 나이가 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탄생한 만혼 결혼식 풍경은 좀 남다르다.
보통 부모님들은 신랑 신부에게 “서로 아끼면서 잘 살아라”고 하는 데 만혼 부부에게는 “빨리 애 낳아라”고 하는 것부터. 그뿐이랴. 주례 선생도 보통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고 하는 데 만혼 부부에게는 “검은 머리 파뿌리 되기 전에 결혼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만혼에 대해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결혼 적령기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결혼 당사자가 진정으로 인생을 같이할 상대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때이다. 결국 결혼이라는 것도 인생을 사는 한 방법이 아닐까.
10여 년 전에만 해도 ‘취집(취직 대신 시집)’이라는 말도 유행했었다.
그런데 올 9월엔 “(여자는) 시집가는 게 취직하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대학교수에 대한 해임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취집’ 말을 했다간 목 날아간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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