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목욕문화
다양한 목욕문화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9.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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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KBII 한국뷰티산업연구소 수석연구원)

우리 백의민족은 항상 몸을 청결히 하는 예의범절 속에 살아왔으며 조상의 제사나 불공을 드릴 때면 반드시 목욕재계를 하였다. 사전적의미의 목욕은 머리를 감으며 온몸을 씻는 것이고, ‘목욕재계는 제사를 지내거나 신성한 의식을 행할 때 목욕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하는 것을 뜻한다.

신라시대는 목욕재계를 계율로 삼는 불교가 전해지면서 목욕이 습관화되었으며,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죄수에게 목욕벌을 내리기도 했다. 삼국과 고려의 불교가 목욕재계를 율법으로 정하면서 주술적 수단이었던 목욕이 진일보했다. 불교가 국교로 부흥하면서 우리민족의 목욕문화는 더욱 성행하게 된 것이다.

삼국시대에 대중화된 풍속으로 자리 잡은 목욕문화는 백제왕이 불상, 경전을 일본에 보내면서 함께 전파되었으며 불교가 발전한 통일신라시대에 증기욕이 발달되면서 더욱 확대되어 일본에 전파되기도 했다.

근대 이전에는 물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더위를 식히는 '멱감기'가 남녀노소 불문 최고의 피서법이었다. 수영과 목욕의 구분이 없었으며 사람들은 냇가나 한강에서 몸을 씻으며 더위를 이겨냈다. 개항 이후부터 근대화 영향으로 수영과 목욕이 구분됐다. 일제는 신체를 단련한다는 이유로 수영장을 만들고 건강을 앞세워 공중목욕탕을 만들었다. 백사장이 있어 물놀이 공간으로 인기였던 한강 부근에 최초의 수영장인 '서빙고 수영장'이 생겼다.

목욕탕도 점차 일상으로 스며들어 1980년대 대중탕 허가 기준이 완화되면서 서울 목욕탕수는 급증했다. 이후 헬스 사우나, 스포츠센터 등 다목적 목욕탕이 생기고 찜질방이 등장하면서 목욕도 하나의 여가 공간으로 변화되었다.

서양의 목욕문화의 전성기를 꼽으라면 고대 로마시대라고 할 수 있다.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목욕탕을 종합놀이공간으로 발전시켰다. 배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의 유적에는 화려한 목욕탕이 있었으며 탈의실과 운동기구까지 갖춰져 있었고 로마제국이 번성하면서 목욕탕은 황제들의 능력을 과시하는 장소가 됐다. 로마의 목욕탕에 필수적인 시설이 있었다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한증막이였다. 전문가들은 뜨거운 수증기를 이용하는 증기욕이 체온 상승과 디톡스에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이며 한증막 안의 온도가 높아지면 탕 안 공기 속의 이온 함유량도 급격히 늘어나는데 이런 변화가 근육의 피로를 쉽게 풀어주었을 것이다.

목욕탕이 크고 화려할수록 황제가 정치를 잘해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상징처럼 여겼으며 황제들은 소박한 목욕탕과 구별해 테르마이라고 부른 호화 목욕탕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카라칼라 황제가 216년 만든 카라칼라 목욕탕은 축구장 4개를 합한 정도의 규모로 한번에 2000명까지 입장할 수 있었으며 목욕탕뿐 아니라 도서관과 강연장, 집회실, 체육관까지 갖춘 종합시설이었다.

터키의 공중목욕탕 하맘은 십자군 원정을 떠난 유럽인들이 목욕문화를 되살리게 할 만큼 일찍부터 잘 발달했다. 터키 국민들은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기 전 항상 손과 입안, 귀와 발까지 깨끗하게 씻었으며 마을에는 사원과 도서관, 학교, 병원 등 기간시설과 함께 꼭 목욕탕이 있었다.

터키인들은 고인 물은 청결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맘에는 큰 욕조는 없었고 대신 달궈진 대리석 바닥에서 땀을 낸 뒤 때를 밀고 비누거품으로 헹구는 목욕을 하였다. 유럽인들처럼 터키인들에게도 하맘은 사교의 장이자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곳이기도 하였으며 결혼을 앞둔 신부는 결혼 전 겔린 하맘’, 신부의 목욕이라는 행사를 열고 마을 여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결혼 생활의 지혜를 구했다고 한다. 산후 조리도 돌잔치도 모두 하맘에서 이뤄졌다고 하니, 터키인들에겐 하맘이 정말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민속에는 물의 신성관념으로 하여 목욕을 으뜸의 청정법으로 여겨 힌두교에서는 갠지즈강을 신성시하여 더러움을 제거하여 청정을 얻기 위해 그 강물에서 목욕하는 것을 의식으로 삼고 있다. 이슬람교의 사원 앞에는 목욕장이 있어 사원에 참배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거기서 목욕을 해야만 하는 계율이 있다.

이처럼 인도는 청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힌두교와 이슬람교 영향으로 사원에 입장하기 전이나 기도를 올리기 전에 반드시 몸을 씻도록 했다. 인도인은 허브를 넣어 끓인 물로 머리를 감았고 이에 영향을 받은 18세기 영국인들은 당시 머리를 감지 않는 습관에서 머리를 감는 쪽으로 의식이 변했다. 영어의 샴푸 shampoo의 어원이 이를 증명한다. 샴푸는 누르다또는 마사지하다의 뜻을 가진 단어로 그 어원은 힌두어 챰포 champo에서 온 말이다.

목욕법에는 욕탕의 온도에 따라 고온욕, 중온욕, 미온욕, 온냉교대욕으로 나누고, 몸을 담는 정도에 따라 전신욕, 반신욕, 부분욕으로 나누며, 그 외 열기탕욕인 사우나, 초음파탕, 진흙탕, 온천욕 등이 있다. 사우나에서 오래 버티기 경쟁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10분정도, 뜨거운 공기가 호흡기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마른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단시간에 수분과 노폐물을 배출하느라 피부는 탄력을 잃고 혈관은 팽창된 상태이니, 직후에 찬물 샤워로 자극을 주는 것은 금물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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