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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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9.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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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석양빛이 보고 싶어 하귀 바닷가를 찾는다. 가을이 깊어진 산책길에서 토마스만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떠올린다.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토마스만의 단편집에 실린 작품이다. 호기심에서 읽었지만 사실 아직도 완벽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예술가이자 도덕주의자인 주인공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가 베니스여행 중에 미소년과 우연히 마주치고, 그 저항할 수 없는 매력에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려 괴로워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나이든 작곡자는 말 한마디 못 건네고 그 소년의 주변을 맴돌다 바닷가 벤치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석양이 질 무렵이었다.

요양을 위해 물의 도시 베니스에 온 작곡가가 무심코 발견한 아름다운 소년 때문에 느끼는 황홀과 고뇌, 환희와 절망의 흔들림이 내게는 충격이었다.

영화에서는 전편에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이 흐른다. 배경이 된 베니스의 시간은 세계대전이 있기 몇 해 전이다.

토마스만은 작곡가 말러를 모델로 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광적신봉자로서는 작가보다는 음악가가 더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기품과 격조는 문장에 의해 표출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예술가에게 있어 오랫동안 갈구하는 정신적인 미와 관능적인 미의 완전한 결합체는 무엇일까. 예술은 더 깊은 행복을 주었다가 더 빨리 소모시킨다.

인간은 여행지에서 죽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장소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희구하면서 걷고 있는 길 위의 일이다.

세속적 위안이나 행복 속에 있어도 왠지 이 길은 칠흙 같은 어둠에 갇혀있는 것 같은 느낌. 때로는 한 여름의 빛나는 태양 같은 정신의 풍경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찾지 못 한 채 끝을 향해 걸으면서 우리는 노을을 본다.

만일 그 순간이 생명과 바꿔도 억울함이 없이 아름답다면 그게 행복이다. 그러나 복원 될 길이 없는 젊음을 화장으로 복원했다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죽어가는 육체 앞에 예술은 구원이 될 수 있을까.

엄격한 원칙 속에서 살아 온 몰락, 노을.

하귀 바닷가에서 노을을 보며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게 된다. 슬프게 아름다운 것.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면 계속 보고 싶은 것이다. 최대한 자주, 최대한 오래, 최대한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것이 늙음인지 모른다. 구스타프가 본 아름다움도 이러했으리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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