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주는 희노애락(喜怒哀樂)
가격이 주는 희노애락(喜怒哀樂)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9.1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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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연 제주한라대 관광경영과 교수·논설위원

희소성의 원칙’.

희소성이 높을수록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는 경제법칙.

똑같이 찍어내는 공산품들은 똑같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는 가격이 시간적인 시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라스베가스 MGM Grand호텔에서 프런트 데스크 직원으로 있을 때 경험이다.

20년 전에 5005개의 객실을 보유했던 MGM호텔의 제일 작은방이 대략 6만원대 성수기에는 10만원~20만원대였다. 늦은 오후 7살 정도의 딸 아이와 함께 피곤한 표정의 남성이 walk-in(예약 없이 오는 손님)으로 오늘 가장 저렴한 방이 있냐고 물었다.

그 당시 MGM호텔은 총 5005개의 방중에 VIP를 위한 객실을 제외한 제일 비싼 600만원짜리 스위트룸이 6만원에 제공될 때가 있다.

그 조건은 첫째, Walk-in(예약 없이 걸어 들어와 방이 있냐고 묻는) 손님이여야 한다. 둘째, 모든 객실이 다 나가고 제일 비싼 그 스위트 룸만 남아있어야 한다. 셋째, 그 손님은 그 날 하루만 자야 한다. 왜냐 하면 그 스위트 룸은 오늘 안에 600만원에 팔릴 확률은 극히 낮고 6만원이라도 받고 이익을 남기겠다는 호텔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 호텔의 객실은 매일 매일 방 5005개를 다 팔아야 하는 재고가 없는 제품이다.

그 어린 딸과 함께 온 남성분이 그 조건에 딱 맞아떨어져 600만원 짜리 방을 6만원에 배정을 하고 손님에게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분은 방을 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다시 프런트로 와서 나에게 도대체 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방을 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처음 들어와 방이 있냐며 물을 때 그 어둡고 피곤했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감사와 즐거움의 표정으로 사랑스럽게 걷는 딸을 데리고 가는 뒷모습에 난 또 한 번 가격이 주는 위력을 느꼈다.

필자가 딸로서 아버지를 위한 효도를 하기 위한 반대의 경험이 있었다.

남동생이 두바이에 근무할 때 부모님을 모시고 두바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연말 휴가차 간 여행이라 특히 아버지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구경하시겠다고 하셔서 모시고 갔었다.

버즈칼리파 전망대 입장료를 인터넷 예약을 하면 약 4만원 정도에 살 수 있는데, 예약하는 걸 깜빡 잊어버리는 바람에 직접 방문해서 표를 사려했더니 한사람 당 약 15만원이라고 했다. 성수기라 원가격에 3배가 넘는 셈이다.

과연 이렇게 거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전망대를 관람해야 하는지 갈등을 하던 나는 아버지를 설득해보려 했으나, 아버지는 여기까지 와서 이걸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인상이 굳어지시는 걸 보고 결국 버즈칼리파 전망대를 오르기 위해 3배가 되는 거금을 지불했다.

그 당시 전망대를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이 있다. 아버지만 활짝 웃고 계신다.

전망대를 올라갔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모처럼 함께하는 가족여행인데 이왕이면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 버즈칼리파 건물모양의 기념품을 사서 아버지께 선물해드렸다. 그 기념품은 지금도 아버지 책상 위에 진열해 놓으셔서 볼 때마다 그때의 쓰라리면서도 즐거웠던 추억을 부모님과 회상하기도 한다.

가격이 주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분명 있다.

관광학적인 관점에서 서비스의 가격을 보게 되면 소비자들은 너무 신기하게도 똑같이 생긴 객실이나 비행기 좌석의 가격이 희소성의 법칙에 따라 얼마 남지 않으면 점점 가격이 비싸진다는 걸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바가지가 주는 노여움 즉, 소비자들에게 가격이 주는 가장 큰 불쾌는 바가지이다.

요금이나 물건 값을 실제 가격보다 비싸게 지불하여 억울한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라면 두바이의 버즈칼리파 전망대 입장료는 바가지인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전망대를 올라가는 내내 미리 예약하지 않았던 나의 불찰에 대해 느꼈던 언짢음이었지 바가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전망대를 둘러보시던 아버지의 미소로 그 언짢음조차 바로 씻어 내려졌다. 어디에도 바가지는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억울한 가격에 불친절이 겹치면 대부분의 관광객은 노여워하고 우린 그것을 바가지라 하는 거 같다.

가격도 하나의 제품이다.

바가지로 노()하면 관광객의 여행 전체의 추억을 망칠 수 있는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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