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먹는 날
닭 먹는 날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9.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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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철 제주대학교 생명공학부 교수·논설위원

무더운 여름을 잘 보내기 위해서 보양식으로 초복, 중복, 말복에 닭을 삶아 먹는다.
삼복(三伏) 더위는 여름이 시작하는 음력 6~7월 사이에 몹시 심한 더위를 말한다.
3번 엎드려 굴복하다는 뜻으로 이 기간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초복, 중복, 말복으로 10일간 간격을 둬 보양식을 먹었다고 한다.
왜 소고기, 돼지고기가 아니라 닭이었을까?
그 정답은 옛 우리선조의 삶을 살펴보면 찾을 수 있다.
과거 조선시대에 경제 구조는 농업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이러한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소’ 였을 것이다.
농기구가 발달하지 않은 조선 시대에 소는 사람을 대신해서 밭을 갈고 수레를 끌며 농사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이러한 소를 잡아서 먹는 것은 농사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고기를 전혀 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부 양반들이 소를 잡아서 먹기 시작했는데 농사를 지을 소가 없어 보호하기 위해서 한때 우금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 돼지는 식용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사육되지는 않았다.
돼지는 종묘와 사직 등 제사에 이용되기 위해서 키워졌다.
사람이 먹는 음식을 나눠 먹어야 하므로 경쟁관계가 형성돼 집에서 쉽사리 키우지는 못했다.
반면 닭은 키우기도 쉬웠으며 음식을 나눠 줄 필요도 없었다.
풀어 놓으면 벌레를 잡아 먹으면서 크고, 알도 낳고, 고기도 주는, 1석2조의 동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닭을 무더운 여름을 잘 보내기 위해서 단백질 공급원으로 즐겨 먹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제주도 풍습에도 이러한 모습이 남아 있다.
타지역과 다르게 제주도에는 예부터 음력 6월 20일을 ‘독(닭) 먹는 날’이라고 해서 닭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다.
실제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내 마트에서는 초복, 중복, 말복보다는 ‘독 먹는 날’에 닭 판매 마케팅을 집중적으로 했다.
조 파종이 끝나고 무더위가 시작되고 한가해지면 여름을 잘 보내기 위해서 닭을 잡아서 삶아 먹었다.
단백질 공급이 귀하던 시절, 닭 한마리를 삶아서 먹고, 국물로 죽을 만들어 나눠먹으며 적은 양으로 많은 식구가 먹을 수 있었던 경제적인 요리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음식으로는 꿩엿이 있다.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사냥으로 잡은 꿩을 고아 좁쌀감주에 넣어 졸인 후 엿으로 만들어 보관했다.
꿩엿은 저장기간도 길고 겨울철에 단백질 섭취가 어려울 때 몸보신용으로 이용된 음식이다.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아온 닭은 육계와 산란계로 구분해 목적에 맞게 사육되고 있다.
육계는 고기로 이용되는 닭을 말한다.
사육기간은 35일 이내로 짧다.
산란계는 계란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닭을 말한다.
한때 양계산업은 AI(조류인플루엔자), 계란 잔류농약 검출, 브라질산 수입 개방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도 있다.
하지만 치느님(치킨+하느님 합성어)이라는 말을 만들어 낼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연간 소비된 닭고기는 1인당 20마리씩 소비됐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닭은 경제 불황속에서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식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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