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19 18:35 (목)
만원의 행복
만원의 행복
  • 제주일보
  • 승인 2019.09.09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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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진주 애월고등학교 교사

행복 교실 프로그램으로 제주민속오일장 체험 활동을 계획했다. 요즈음 아이들은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사기 때문에 가까운 재래시장에 대한 경험이 없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한 번도 오일장에 다녀온 경험이 없는 친구도 있다. 어릴 때는 가끔 부모님과 같이 가 본 경험이 있었지만 청소년이 되고는 거의 가 본 적이 없단다.

10명의 아이에게 오일장에서 쓸 수 있는 1만원권 상품권을 나눠주고 2시간을 줬다. 오일장에만 있는 물건을 사진으로 세 컷 이상 찍어서 단톡에 올리는 것이 오늘의 미션이다. 미션 수행을 제일 잘하는 친구에게는 상이 있음을 공지했다.

다정이(가명)는 나랑 벗이 돼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다정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한다. 대안 교실에 와서도 선생님하고만 소통하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고등학생으로 평범하고 겉모습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친구 없이 늘 혼자 다니는 학생이다. 주변 친구들에게 늘 상처받고 친구에게 다가가는 것을 어려워하며 친구가 먼저 인사를 건네도 대꾸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다정이가 센 척한다고 싫어하며 앞에다 두고도 흉보기도 한단다.

자존감이 무척 약하고 용기가 없어서 목소리는 옆에서도 거의 들리지 않게 말을 해서 다정이에게 좀 더 크게 말해주기를 자꾸 당부하게 된다. 그래도 대안 교실에서 한 학기를 함께 하다 보니 나에게는 자기 의견을 잘 표현하기도 한다.

오일장 입구에서 자기 독사진을 한 장 찍어달란다. 미션 한 가지는 성공한 것이다.

두 번째로는 할머니 장터로 갔다. 할머니 장터는 제주시에서 할머니들이 자기집 텃밭에서 재배한 상품을 가지고 와서 팔며 자리세는 따로 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 줬더니 다정이는 할머니들 앞에서 자기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한다. 두 번째 미션 성공이다.

야채 시장을 지나 음식이 즐비한 곳을 지나게 되니 맛있는 먹을거리가 우리를 유혹한다. ‘할망빙떡이라는 가게가 우리를 유혹한다. 다정이에게 빙떡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어릴 때 할머니가 만들어 줘서 잘 먹는다고 한다. 빙떡은 메밀에 소화가 잘되는 무를 깨소금으로 양념해 만든 제주 고유의 떡으로 단백하며 다이어트에도 최고 식품이다. 내가 빙떡을 사니 다정이는 센스 있게 옆에 있던 시원한 식혜를 두 잔을 샀다. 얼음이 동동 올려 져 제법 더위를 식혀줬다. 우리는 먹을 것을 들고 쉼터에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옆 테이블에 있던 중년의 두 사람이 교복을 입은 학생과 내가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선생님이 학생과 함께 왔냐며 말을 건넨다. 수업의 한 과정으로 10명의 학생이 미션을 수행 중이라고 하니 요즈음 학교는 참 다니기 좋아졌다며 부럽다고 한다. 그러면서 먹고 있던 우도 땅콩을 우리에게 권한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함께 나눠 먹었다.

다정이의 미션 세 컷이 모두 완성됐다. 쉼터에 앉아 있는데 다른 친구들이 미션 수행한 사진들이 단톡카톡카톡거리며 올라 온다. 오일장 간판 아래서 폼 잡고 한 컷, 고사리 판매대 앞에서 한 컷, 제주산 백도라지라고 쓰인 곳에서 한 컷, 제주산 표고버섯이라고 쓰인 곳에서 한 컷, 제주 옥돔 생선 집 앞에서 한 컷, 한라봉 과일 집 앞에서 한 컷, 제주 갈옷 집에서 한 컷, 제주 카레멜이라는 봉지를 얼굴에 대고 한 컷. 같은 가게 앞에서도 아이들 포즈는 다양했고 생기가 넘쳤다.

다정이와 나는 안 가 본 쪽으로 가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토끼, , 강아지 등 동물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그곳에 다 모여 있었다. 강아지와 놀고 토끼를 보며 행복해했다. 2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아이들은 이날 오일장에서 체험한 만원의 행복이 정말 행복 그 자체라고 즐거워한다. 생활 속 교육이 아이들의 기를 살리게 한다.

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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