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을 위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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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일보
  • 승인 2019.09.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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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시인

기쁨과 슬픔을 저울에 달면 어느 쪽이 더 무거운가? 이 질문으로 시 창작 강의를 시작한다. 의아해 하면서도 슬픔이 무겁다는 답이 많다. 내심 그러길 바라서 한 질문이다.

이런 발상을 했다면 기쁨이 왜 기쁨이라고 부르고, 슬픔은 왜 슬픔이라고 하는 지 언어의 배경도 그럴듯하게 풀어야 한다. 기쁨이란 기를 뿜어내는 상태로 공기와 같아 물보다 가벼우니까 생긴 현상이다. 우리가 평소 쓰는 말도 궁리해서 풀어보면 시 쓰기 좋은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제주어인 속아수다를 풀어보면 수고했습니다의 준말로 수고라는 뜻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보면 한자 수고(手苦)’에서 비롯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수고했다는 말은 손이 고생했다는 의미로 그만큼 이로운 일을 했다는 칭찬이다. 그 속아수다 앞에 폭삭 속아수다하고 하면 무에 바람이 들만큼 뼈가 시리도록 고생했다는 의미이고, 복삭이 붙으면 솔라니(옥돔)를 굽다가 다 태울 만큼이고, 문짝이라는 형용사가 붙으면 오장이 녹아서 물이 될 만큼이고, 번찍 속아수다라고 하면 너무 지나치게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고달프다는 말도 그냥 생긴 말이 아니므로 고달이란 괴로움에 이르렀다는 한자 고달(苦達)’에서 왔다고 짐작해 본다. 배고프다는 말도 제 때에 먹지 못해서 배가 고달프다는 말의 줄임이다.

우리가 걸어다는 길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길은 길어서 길이라고 하는 거다. 길의 속성이 짧지 않기 때문에 길이도 길고 길이를 키우려고 자라는 길이를 키라고 하며 기다림도 생각보다 길어서 기다림이 길어진다는 속성이 있음이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를 만든 여신이다. 설문대를 한자로 풀어보면 설문대(泄門大)’ 쏟아내는 양이 크다는 준말로 성산포에서 우도를 갈라놓을 만큼 어마어마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500명의 아들에게 먹일 식량이 없어서 죽을 끓이다가 솥에 빠져 죽었다거나 물장올의 수심을 재려고 들어갔다가 빠져 죽었다는 유언비어는 삼가야 한다. 한라산에 사는 노루나 두더지나 멧돼지가 얼마나 많이 사는지 알면 그 따위 발언은 못 할 것이다.

제주민요의 백미는 서우젯소리이다.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영등굿에서 신과 인간이 화합하는 대목에서 부르는 노래로 어원은 서우제(瑞雨祭)’이다. 다시 말하자면 비가 제 때에 제대로 오셔야만 풍년을 기약하므로 비를 기리는 제가 상당히 중요함을 절로 느끼게 한다. 서우제 소리의 곡조 또한 기가 막힐 정도라 제주도 사람으로서 제주도 흥취가 절로 넘실거린다.

아무튼 개인적인 소견일 뿐이지만 인문학 시대에 말의 어원을 유추해 보는 것도 시인에겐 시상을 돕는 일이다. 슬픔이 더 무거운 이유는 기쁨처럼 넘치는 기운과 달리 물기가 배어있는 심중이라 그렇다.

제주일보 기자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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