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발' 앞둔 '악마'의 시대
'대폭발' 앞둔 '악마'의 시대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09.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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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김홍선 감독의 오컬트 영화 ‘변신’을 봤다.
척추 보호에 좋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딱이라는 ‘리클라이너’관이란 델 들어가서 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 영화를 본 건 처음이다.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악마’가 한 가족 안에 숨어들면서 기이하고 섬뜩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영화의 줄거리는 만화영화 같기도 했다.
가족들이 서로 의심하고 증오하고 분노하는 가운데 구마(驅魔) 신부인 삼촌 ‘중수(배성우)’가  악마를 물리친다는 내용으로 종결된다.
구마 의식 등이 옛날에 본 어떤 외국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 데, 중수의 말이 마음에 오래 여운을 남긴다. “악마가 어떤 사람 속에 들어오느냐 하면…, 분노가 많은 사람들에게 들어온다. 그 분노가 점점 커져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고 만다.”
영화관 밖에 나오니 바람이 선선하다. 아, 가을이다.
▲오는 주말(8일)은 흰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다.
이 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 가을의 기운이 완연히 나타나는 시기로 생각만 해도 서늘해지는 느낌이다. 앞으로 더위가 있다고 한들 그것은 가을을 시샘하는 노염(老炎)이고 잔서(殘暑)일 따름이다.
서늘한 바람이 불고 이슬이 진하게 내리면 평화로의 억새꽃도 하얗게 피어날 것이니 말이다. 박세당(朴世堂, 1629~1723년)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가을은 모든 산의 단풍이 눈부시고 밤에는 벌레소리 흥겨우니 어찌 즐겁지 않느냐”고 했다. 
지난 여름은 정치, 사회적으로 편할 날이 없이 분노와 증오의 나날로 점철됐다. 생각해 보면 모든 계절은 하나의 출발이나 다름없는데 가을은 미진한 일을 마무리하고 겨울준비를 서두르는 계절이다.
우리 사회에 몰아치는 이 증오와 분노가 선선한 가을바람에 날려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가 지금 우리 사회를 말하라면 ‘증오와 분노의 시대’라고 하지 않을까. 마이클 프렐의 ‘언더도그마’(Und erdogma, 박수민 역, 지식갤러리)는 마치 우리 사회를 고발하는 듯하다.
‘사회적 약자는 선(善)’(언더도그마 현상)인 반면 ‘사회적 강자는 악(惡)’(오버도그마 현상)이라는 기형적 대중심리를 지적한다. 선악(善惡)을 자의적으로 구분해 놓고 분노를 표출하고 증오를 발산하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의식을 콕 찔러댄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언더독’들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오버독’들은 힘이 세다는 것만으로 아예 증오의 대상처럼 돼 버렸다. 정도가 동병상련의 보편적 정서를 넘어섰다.
문제는 우리 정치가 이런 분노와 증오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촛불을 보고 분노 마케팅, 증오 마케팅 휘발성과 폭발력을 잘 배웠는가? 여당도 야당도 대놓고 국민들에게 “분노하라”고 불을 지르고 상대편을 ‘적(敵)’으로 증오한다. 아예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이다.
하지만 ‘중수’ 신부의 말처럼 분노와 증오는 악마를 불러들일 수도 있다.
부메랑이 돼 자신을 해칠 것이다.
▲분노와 증오 마케팅의 노림수는 뻔하다. 여당도 야당도 ‘2% 이상’으로 많이 부족하다.
‘정치가 3류’가 그걸 채우려고 ‘분노와 증오’에 편승했다. 총선이 7개월여 남은 정치판은 죽기 아니면 살기다.
가뜩이나 언더도그마 현상은 더욱 커졌다. “조국 정국”은 가을로 이어지면서 이제 ‘대폭발’을 앞둔 느낌이다.
분노와 증오는 거리를 넘친다.
자칫 말 잘못했다간 그대로 ‘적’이다.
‘악마’의 시대다. 나라 밖에선 미·일중·러·북이 우리를 조이고 안에선 이렇게 서로 ‘적’이 되면. 이 나라에 과연 희망과 미래가 있을까.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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