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도 답이다
스트레스도 답이다
  • 제주일보
  • 승인 2016.03.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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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자. 세이레어린이극장 대표

한동안 ‘안녕하십니까?’가 유행어처럼 회자된 때가 있었다. 안녕하지 못하니 내 말 좀 들어 달라는 의미로 쓴 안녕하십니까, 새삼 묻고 싶다. 아니 알고 싶다. 안녕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 과거엔 안녕했는데 지금은 안녕 못한 사람은 또 얼마나 될지, 들리는 말에는 다들 안녕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안녕하지 못한 일들만 생기니, 신경질만 난단다. 스트레스로 답답하단다. 그래서일까, 신경질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수두룩하다. 급하게 돌아가는 변화 속에서 적응하기도 힘들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도 힘든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 수가 있을까. 과거, 가족이나 사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친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극개인주의로 갈등이 일상화된 사람들에게 신경과민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TV 프로그램, 영화만 봐도 알 수 있다. 버럭 화를 내는 캐릭터는 예전 같았으면 버릇없다고 욕을 먹었을 텐데 이제는 오히려 인기 캐릭터가 됐다. ‘죽음’ 같이 금기시되는 단어들도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 입에서 자주 튀어나오는 단어가 됐다. 요즘은 드라마, 영화들을 보다가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젊고 예쁜 여배우가 악한 연기를 하다 ‘죽이겠다’고 주변 사람들을 협박하고 거침없이 살인까지 저지르는 무시무시한 내용들이 즐비하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과잉의 시대’인 것 같다. 물질도 과잉이지만 감정도, 경쟁도 다 과잉이다. 그러니 ‘둔하게 살자’, ‘느리게 살자’는 이야기가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예민하게 살다보니 나도 타인도 병들게 되는 거다. 조금만 진정하자는 얘기 아닐까.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도 다르지 않다. 아니 더 날카롭게 급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너무 예민하게 살아봤자 자기 손해다. 정신뿐만 아니라 몸 건강에도 좋지 않다. 문제는 예민한 사람이 주변에 있어도 스트레스라는 것. 물론 사람이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뭐든지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혼자서 그 스트레스를 조절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려면 예민하게 굴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알게 된 건 최근이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작품 고르는 일에서부터 공연이 끝나는 날까지 스트레스 연속인 작업이다. 잘 만들고 싶고, 많은 관객을 모시고 싶고, 흥행도 하고 싶고…. 그런데 얼마 전 꽤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심각한 이야기를 들었다. 열심히 작품을 만들었는데, 관객이 늘 거기서 거기다. 왜 그럴까, 분석이 잘 안 된다. 무엇이 문젠가 여쭸더니 그가 한 말, 왜 관객이 외면하는 이야기를 만드느냐, 요즘 트렌드는 가볍고, 유쾌하고, 요란한 음악이 나오는 그런 작품인데, 그런 흥겨운 작품을 만들면 왜 관객이 없느냐, 관객은 몰리게 돼 있다, 너한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신다. 틀린 말은 아니련만 섭섭하고 화가 나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어, TV나 영화·뮤지컬이 그런 류의 트렌드를 다룬다면 연극은 그것보다 현장에서 관객과 배우가 같이 호흡하는 아날로그적인 예술이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돌아오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니, 눈물이 났다. 나의 바람은 오로지 극장에서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몸으로, 침이 튈 정도로 열정적인 연극을 통해 그런 뜨거움을 관객과 나누고 싶었는데, 작품부터가 잘못됐다면 큰일 아닌가.

결론은 못 내리겠다. 무엇이 옳은지. 지금까지 해 온 작업을 버리자니 두렵고, 그러다 얻은 결론, 이 스트레스도 고맙다는 것.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를 돌아다보고 지금이라도 새롭게 변화하라는 것이니 좀 더 깊게,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아니 이 고민도 실컷 즐겨보자, 그리고 하나하나 더디게 가보자, 이제부터는 여유를 가지고 많이 보고 새롭게 느껴보자 마음먹었다. 그러다보면 뭔가 보이겠지. 이런 마음이 들자 스트레스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오히려 빨리 뭔가 도전하고픈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스트레스도 하나의 답이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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