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이 본거지 삼은 천혜 요새 ‘바르크진’
징기스칸이 본거지 삼은 천혜 요새 ‘바르크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8.29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 원제국 발상지 바르크진을 가다(2)
넓은 늪지가 사방으로 있고 산맥을 끼고 있어 한 눈에 보아도 천혜의 요새인 바르크진 마을이 멀리 보이고 있다.

아침 일찍 시베리아 벌목장에 다니는 트럭 같은 승용차를 타고 바르크진으로 출발, 도심을 벗어나 바이칼호수가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오늘 목적지까지는 210, 대부분 호수를 끼고 달려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꾸물대던 날씨가 비를 뿌리기 시작합니다.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곳을 왔는데 징기스칸이 살아있다면 솔롱고스(한국인)에게 중요한 요새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심술일 거라는 상념을 하며 마음을 편하게 갖기로 했습니다.

걱정은 오래가지 않아 비는 개이기 시작했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숲뿐, 어쩌다 벌판이 나오면 벌판 가운데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유채가 이미 수확을 마쳤는데 이곳은 지금 한창 꽃이 만개하고 있으니 이곳은 제주도보다 훨씬 북쪽 지역이니 7월에 만개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바르크진이 원나라의 발상지라는 것은 원조비사18절에 기록됐다고 합니다. 남북으로 세워진 바르크진 산맥이 서쪽에 있어 깊고 높은 산을 등에 지고 앞에는 강과 늪이 길게 뻗어있으니 이 이상의 요새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사 징기스칸은 이곳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병사의 훈련과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왕성한 용기로 세계정복에 나섰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달려도 달려도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이칼호수를 낀 호안도로, 숙소가 있는 우스티바르크진에 도착한 것은 오후 420분입니다. 4시가 지났으니 해가 질 듯 하지만 백야현상 때문에 이곳은 아직도 한낮처럼 밝습니다. 짐을 풀고 여기서 48떨어진 바르크진으로 향했습니다.

바이칼호수 중간지점으로 마치 반도같이 생긴 이 곳은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바이칼호수 중간지점으로 마치 반도같이 생긴 이 곳은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바르크진을 가기 위해서는 강폭이 100나 되는 바르크진강을 카페리를 타고 건너야 합니다. 카페리는 자체 동력이 없어 자그마한 보트가 밀어서 1시간 만에 바르크진에 도착하니 아닌게 아니라 천혜 요새가 분명한 듯 합니다. 앞에는 강과 늪지대, 뒤는 울창한 숲이어서 아무나 다닐 수가 없을 지형을 이루고 있어 한 눈에 보아도 요새임을 느낄 수 있군요.

이런 곳에서 병사를 양성해 원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게 아니냐는 설명과 함께 원래 브리야트 공화국 수도는 처음 바르크진이었는데 울란우데로 옮겼다고 합니다. ·몽 학자들은 특별한 유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몽골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겠다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중학교 부설 박물관에 안내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갔지요. 첫 외국인 방문이라는 안내인의 말에 설마했는데 사실이랍니다. 여기 한 번 오려면 얼마나 돌고 돌아와야 하는데 그렇다고 특별한 것도 없는 곳을 외국인이 찾아올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박물관으로 들어섰습니다. 순간 진열된 물건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한참 돌아보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네요. 유리원판 필름입니다. 사진 발명 초기에 사용했던 유리원판 필름이 잔뜩 전시돼 있어 꺼내 보았으면 했지만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밖에 나와 주변을 돌아보고 차를 타고 출발할 때 나중에 타는 사람들 손에 전시된 유물들을 들고 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팔아 주더라는 겁니다. ‘아쁠사!’ 나는 얼른 유리 원판 필름을 사기 위해 달려갔더니 이미 문 닫고 가 버렸더군요. 조금만 천천히 나왔으면 귀중한 유리 원판 필름을 살 수 있었는데 하고 후회했답니다.

바다의 느낌을 주고 있는 바이칼호수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있다.
바다의 느낌을 주고 있는 바이칼호수에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있다.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에 들판에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 저편으로 보이는 바르크진은 아늑하기도 했지만, 말의 모습에서 진지 배열, 훈련광경, 작전회의 장면이 환상처럼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 여기가 바르크진. 옛날을 산 사람처럼 값싼 감상에 젖어보며 안내자가 말해준 길의 끝이라는 뜻을 지닌 통구스어 스보라는 말을 생각게 합니다. (바르크진을 통구스어로 스보라고 한다고 함)

다음 날 여기까지 왔으니 바이칼호수를 돌아보기 위해 쓰비야토이노스로 향했습니다. 지도에서는 섬처럼 보이는데 실은 반도로 바이칼호수에서는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반도 가운데 1877ш 주봉에는 한 여름인데도 잔설이 남아있고 사방에 야생화들이 지천에 피었습니다. 가는 도중 시원한 샘물이 흐르는 곳에 신목(神木)이 있어 잠시 멈추더니 운전사가 먼저 돈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신비스러운 바이칼호수, 많은 지역을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곳 반도에서의 추억은 오래오래 남습니다.

처음 몽골 연재를 시작할 때는 16년 동안 돌아다닌 몽골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할 것 같았지만, 회가 지날수록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꽤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더 깊게 몽골 기행을 쓰고 싶었으나 아주 기억에 남는 곳들만 정리하고, 내몽고편 역시 짧게 썼습니다. 이제 원제국 바르크진을 끝으로 바람의 고향,초원의 나라 몽골기행을 마칩니다.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