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 그 시절’ 우리네 삶의 흔적
‘책갈피 속 그 시절’ 우리네 삶의 흔적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8.22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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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꽂힌 책갈피, 각자 추억 담겨
기도문·편지·통장·외화 등 눈길
제법 쌓인 흔적들 공유하고 싶어
책갈피 속 우리네 흔적들.
책갈피 속 우리네 흔적들.

잔디밭에서 우연히 발견한 네잎 클로버나 빛깔 고운 단풍잎이 눈에 밟혀 고이고이 모셔다가 책갈피에 꽂은 기억이 다들 한두 번쯤은 있을 게다. 어디 토끼풀이나 낙엽뿐이겠는가. 별의 별 것들이 다 있다.

읽고 있던 책에 무심코 그냥 책갈피로 쓴 것도 있고, 아련한 추억이 담긴 거라 소중하고 은밀하게 모셔둔 것도 있다. 헌책방을 하다 보면 이런 우리네 삶의 흔적들과 종종 만나게 된다.

원 소장자에겐 귀중한 물건이거나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을 만나기도 하고, 볼 때 마다 슬며시 웃음이 나게 되는 즐거움과 조우하기도 한다. 또 그와 관련된 얘깃거리도 있게 마련인 데 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얘기해 보련다.

몇 년 전 부모님이 장서를 정리하고 싶어 한다는 따님의 연락을 받고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애꿎게도 자꾸 내게 화도 내시고 짜증도 내시고 나중에는 욕까지치워 달라고 하실 때는 언제고 무거운 책들을 묶느라 땀 뻘뻘 흘려가며 일하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경우인가 했다.

한바탕 욕까지 먹고 나니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따님이 슬며시 다가와 저간의 사정 얘기를 하고 정말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부모님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곧 요양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거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어딘지 모르게 가슴이 좀 먹먹해졌다. 국외자인 내가 그런 마음이 들 정도인데 두 분 마음은 어떠실까 싶어 계속 욕을 먹어가면서도 끝까지 마무리하고 그 댁을 나왔다.

돌아와 다시 정리를 하다 보니 책갈피 속에서 통장이 하나 나왔다. 거액의 잔고가 남아있는 아직 살아 있는 놈이었다. 경황 중에 그 통장의 존재를 잊고 책을 주셨구나 싶어 바로 연락드리고 다음날 방문했는데 전날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어젠 너무 미안했다시며 사과도 하시니 전날의 서운함이 모두 가셨고, 누구보다 뒤숭숭할 그 분들께 작으나마 기쁨을 드린 것 같아 내 마음도 조금은 편해져서 그 댁을 나설 수 있었다.

한번은 외국에서 유학을 오래한 교수님의 책을 인수한 적이 있었는데 정리하다 보니 책갈피 속에서 그 나라 돈이 나왔다.

요즘 가치로는 아주 큰돈은 아니었지만 그 분이 유학하던 시절의 생활고 일화를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바로 연락했더니 그냥 니 해라셨다. 그래도 유학 시절의 추억이 듬뿍 담긴 거라 종종 그리워하시라고 챙겨서 보내드리니 그 시절이 그립다시며 무척 기뻐하셨다.

볼 때마다 즐거운 놈도 있다.

조그만 쪽지로 우리 제주에서는 볼 수 없는 거다. 달리는 기차 앞쪽에 탄 숭실고 남학생이 뒤쪽에 탄 숭의여고 여학생들에게 미팅 신청 쪽지를 실에 묶어서 날려 보냈다 받았던 그 쪽지다.

1970~80년대 고교시절 육지부에서 몇 량으로 이루어진 기차를 여러 학교 학생들이 함께 타고 수학여행 갈 때나 있었다는 전설을 실증하는 자료다. 그 숭실고 남학생은 성공했다.

실에 묶여 되돌아 온 쪽지 뒤편의 답이 예스(Yes). 당시 환호했을 남학생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얼마나 기뻤으면 이렇게 책갈피에 잘 갈무리해 뒀을까.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책갈피 속 우리네 삶의 흔적들이 책방에 제법 많이 쌓였다. 조만간 그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다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싶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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