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의 영농일기
초보의 영농일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8.1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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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결혼 삼십여 년. 2400남짓 밭을 경작하던 손위 시누가 이제는 힘들다며 돌려준다. 어찌해야 하나? 염두도 못 내고 걱정만 태산이다. 그래도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난다는 동쪽 여자인데 썩은 무라도 잘라보리라는 강단이 생겨 생애 처음으로 초보농사꾼 대열에 합류했다

주위의 조언과 도움을 듬뿍 받아 당근을 파종한다. 계속되는 가뭄에 발아가 힘들지 않을까 싶어 밤낮으로 밭에 드나들며 물을 준다. 조언을 해주는 삼촌들의 이야기가 조금씩은 차이가 있어 언제쯤 파종하고 비료는 언제 주는 게 적당한지 정확한 매뉴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모두의 이야기가 밭고랑에 물 스미듯 소중한 지침서이기에 영농일기를 소중하게 기록한다.

다행히 농업용수가 잘 나오는 밭이라 큰 시름은 덜었다. 계속되는 가뭄과 폭염에 잠도 부족해 언제쯤 비가 오나 일기예보를 열심히 보게 된다. 시누이가 요즘 일기예보는 잘 맞지 않다며 옛 어르신들의 대강은 맞았던 방법임을 강조하며 날씨 보는 법을 꺼낸다.

하늘에 비행기가 똥을 싸민 머지않아 비가 온다.“

바당에 물독 오르민 며칠 안 있어 비가 온다.”

시누이가 해주는 말을 쫓아 하늘을 바라보니 제트기가 지나 간 자리에 제트 기류가 형성되어 있다. 이제는 눈을 돌려 바다를 본다. 물독이란 말은 저 멀리에 있는 바다가 어둡다는 말이라는데, 오늘 본 바다는 푸르기만 하다. 일기예보가 없던 시절 믿을 건 살아오면서 나름 터득한 조상들의 삶의 지혜였으리라. 비를 기다리는 마음에 유심히 하늘 쳐다보고 구름도 쳐다보게 된다. 간절한 마음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횟수도 많아졌다. 초보인 나도 이런데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농부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 더위에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통해서일까? 요즘 들어 평대리에서 직접 당근 농사를 지으며 농촌을 지키고 있는 시조시인의 글을 읽고 또 읽게 된다.

 

화산토 당근들은 삼복불볕 먹고 산다

때로는 집중호우, 자맥질로 숨 고르며

가락동 공판장시세 가늠하는 구좌의 밤.

기상청 예보처럼 빗나가도 할 말 없다

집집마다 역병처럼 잦아드는 가계부

당근 밭 솎아낸 자리 신경통이 도진다.

-김대봉 시조시인 동부새. 3’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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