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평국 선생 독립유공자 인정…“늦었지만 다행” 감격
강평국 선생 독립유공자 인정…“늦었지만 다행” 감격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9.08.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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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출신 항일운동가 5명과 함께 포상자 명단 포함
서훈 추진해 온 학계·종교계 등 “제대로 된 평가 의미”
고 강평국 선생. 사진=신성여고
고 강평국 선생. 사진=신성여고

제주 항일운동의 불꽃을 지피고 33세의 나이로 운명한 고 강평국 선생이 조국 독립 74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강평국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위해 수년 간 노력해 온 학계와 종교계 등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독립운동의 공을 인정받았다”며 감격했다.

국가보훈처는 ‘제74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고 강평국 선생 등 조국 독립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178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고 밝혔다.

제주 출신 독립운동가로는 고 김한정 선생(건국훈장 애국장)을 비롯해 고 강평국 선생, 고 현호옥 선생(이상 건국훈장 애족장), 고 배창아 선생, 고 김태근 선생(이상 건국포장), 고 이원영 선생(대통령 표창) 등 여섯 분이 포함됐다.

강평국 선생은 이미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최정숙(초대 제주도 교육감), 고수선(제주도 1호 여의사) 애국지사와 함께 신성여학교를 1회로 졸업한 후 독립 운동에 뛰어 들었다.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경성지역 연락책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전남 진도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한 후 학생들에게 조선 역사를 가르치다 투옥됐다.

일본으로 건너간 강평국 선생은 1927년 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 초대집행위원장과 신간회 동경지회 부인부 책임자 등을 맡아 항일 운동을 이어갔지만 비밀결사활동 혐의로 일제에 붙잡힌 1933년 지병 악화로 서거했다.

강평국 선생은 제주는 물론 육지와 일본을 넘나들며 활발히 항일운동을 전개했지만 유족이 없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왔다.

다행히 모교인 신성학원총동문회와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천주교 제주교구, 고 고수선 애국지사의 장남인 김률근 선덕어린이집 이사장 등이 지속적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요청하면서 올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됐다.

김률근 이사장은 “어머니와 강평국 선생은 친한 친구이자 독립운동을 함께 한 동지”라며 “늦었지만 이제라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게 돼 감격스럽다”고 기뻐했다.

강평국 선생의 항일 활동을 조사·연구해 온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은 “강평국 선생의 포상을 계기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제주 출신 독립운동가들이 더욱 발굴되기를 기대한다”며 “제주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유품을 문화재로 지정하는 등 후속 작업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천주교제주교구 3‧1운동 100주년 기념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문창우 주교 역시 “최정숙, 고수선 애국지사에 이어 강평국 선생도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게 돼 더없이 기쁘다”며 “잊혀져가던 독립운동가들이 제대로 평가 받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제주여성이자 천주교 신자로서 가졌던 강평국 선생의 꿈과 이상을 다시금 제주사회에 널리 알리는 데 노력하겠다”고 얘기했다.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된 고 김한정 선생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가로, 제주청년연합회, 신인회 등에서 활동하다 일제에 체포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고 현호옥 선생은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오사카지부에 가입해 독립 운동을 전개했으며, 고 배창아 선생 역시 일본 오사카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활동을 통해 일제에 맞섰다.

고 김태근 선생은 항일 단체인 비밀결사함덕독서회 결성을 주도하다 체포됐으며, 고 이원영 선생은 제주 3대 독립운동인 법정사 항일운동에 참여하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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