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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살인자’ 슬레이트 쳐다만 볼 것인가
‘침묵의 살인자’ 슬레이트 쳐다만 볼 것인가
  • 제주일보
  • 승인 2019.08.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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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이상 도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슬레이트에 대한 한 두 개 정도의 사연을 갖고 있다. 슬레이트는 한 때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불판으로 각광받았다. 돼지고기 기름이 골을 타고 잘 흘러내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지만, 말 그대로 모르는 게 약이던 시절이다. 동네에 크고 작은 경조사가 발생하면 슬레이트는 단골 불판이 됐다. 그런 슬레이트가 제주 건축에 말 그대로 획기적 지붕이 됐다. 제주 전통의 지붕인 초가지붕을 걷어내는 촉매제가 됐다. 과거에도 태풍의 길목에 위치한 제주는 여름철 태풍이 발생하면 섬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태풍의 강한 바람을 극복하기 위해 초가지붕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게 무엇보다 시급했다. 그런 걱정을 일순간에 해소시킨 게 슬레이트 지붕이다.

슬레이트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초가지붕 개량을 위해 대대적으로 보급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슬레이트 실체가 드러났다. 슬레이트에 10~15% 정도 함유돼 있는 석면성분이다. 석면은 인체에 치명적인 각종 질병을 유발시킨다. 인체에 장기간 노출 때 20~30년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기 때문에 침묵의 살인자라고도 불린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1987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제주도는 2011년부터 슬레이트 지붕철거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실적은 6000곳에 그친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사용되는 주택만 해도 2만 곳이 넘고, 여기다 창고와 공장까지 합치면 35000여곳의 건물지붕이 슬레이트다. 지금과 같은 추세대로 간다면 슬레이트 지붕을 모두 걷어 내려면 예측이 불가능하다.

제주 곳곳에서 노후 슬레이트 지붕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노후화된 슬레이트는 빗물로 인한 침식과 자연붕괴·풍화작용으로 사람과 환경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준다. 그런데 개인이 무단으로 처리할 수도 없다. 반드시 전문업체 등에 위탁해야 한다. 철거비용 또한 만만치 않게 든다. 국비와 지방비 지원이 따른다고 해도 적지 않은 부담이 이어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지 않은 도민들이 생명에 위협이 되는 발암물질과 불안한 동거를 이어간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영세민과 노약자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층이다. 도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정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발상의 전환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정부 제주도의 전향적 자세를 기대한다.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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