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돌, 또 한 번의 기적은…
이시돌, 또 한 번의 기적은…
  • 홍성배 뉴미디어국장
  • 승인 2019.07.31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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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아버지의 말년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포근하다고 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선배의 아버지는 운 좋게 호스피스 혜택을 받았다. 아버지와 가족의 종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는 자신이 말기 암환자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한 달여 간 따뜻한 돌봄 속에서 지내다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평화로운 임종을 지켜본 선배의 여동생은 곧바로 정기 후원자가 됐고, 선배는 한동안 수확 철이 되면 직접 재배한 감귤로 고마움을 전했다.

바로 도내 최초의 무료 호스피스 시설인 성이시돌 복지의원과 관련된 이야기다.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가난한 한림 주민들이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을 보고 19704월 성이시돌 의원으로 개원해 극빈층에게는 무료 진료를 제공했다. 이후 20023성이시돌 복지의원으로 재탄생해 가난한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을 시작했다. 현재는 종교나 경제상황에 관계없이 수술, 항암요법, 방사선요법 등 더 이상 치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말기 암 환자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가족처럼 보살펴 주고 있다.

이곳을 이야기 하려면 고() 임피제 신부(1928~2018)를 빼놓을 수 없다. 임피제(맥그린치) 신부는 한없이 제주와 제주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 제주의 은인으로 기억된다. 1954년 제주에 첫 발을 디딘 그가 척박하고 가난했던 제주에서 돼지 한 마리로 시작해 성이시돌 목장을 설립하고 도내 최초의 신용협동조합과 직물사업, 성이시돌 의원과 요양원, 호스피스 병동을 설립해 나가는 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만든 기적이라며 제주의 이웃들 덕으로 돌렸다.

이처럼 제주와 제주 사람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가졌던 파란 눈의 제주인이 마지막 순간까지 열정을 바쳤던 곳이 성이시돌 복지의원이다. 제주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자 이제는 인간다운 삶, 그리고 궁극적으로 도민 모두가 존엄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어야 한다는데 주목한 것이다.

제주에 대한 사랑과 공헌을 너무 잘 알기에 지난해 4월 선종했을 때 도민들은 한마음으로 애도하며 그의 고귀한 삶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고인은 43과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제주도에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오셨다며 애도했다.

그렇다면 그가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불과 1년여가 흘렀지만 그의 생전에 통 크게 이뤄졌던 후원들은 거의 다 끊겼고, 일반 후원들도 눈에 띠게 줄고 있다.

이러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홍종숙 원장수녀가 후원을 얻기 위해 나섰지만 찾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말기 암 환자들의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현장에 매달렸던 처지라 기업단체와 연결고리를 찾기도 힘들고, 일부 업체에서는 전화조차 받지 않아 막막하다.

결국 고민 고민하다가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일요일마다 도내 성당을 돌며 신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2017218일 오후 제주시 건입동 김만덕기념관.

병마와 싸우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임피제 신부가 오랜 만에 대중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제일 불쌍한 사람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라며 임종을 앞둔 사람과 그 가족을 보살피고 편안히 떠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호스피스 병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많이 내고, 없는 사람은 형편껏 내서 성이시돌 복지의원을 후원해 달라며 제주도민들이 힘을 모아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 줄 것을 호소했다.

의인이 떠난 빈자리. 이번에는 우리 스스로 또 다른 기적을 만들 수 있을까.

홍성배 뉴미디어국장 기자  andhong@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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