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잠들어 있다는 초원, ‘불모의 땅’ 됐더라
대영웅 잠들어 있다는 초원, ‘불모의 땅’ 됐더라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7.1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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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바람의 고향, 초원의 나라 몽골
칭기즈칸 사당과 오당소를 찾아(上)
오르도스 초원에 있는 칭기즈칸 사당. 날씨가 너무 추워서인지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내몽고 사람들은 이 일대에 칭기즈칸의 묘가 있다고 믿고 있다.
오르도스 초원에 있는 칭기즈칸 사당. 날씨가 너무 추워서인지 사람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내몽고 사람들은 이 일대에 칭기즈칸의 묘가 있다고 믿고 있다.

몽골을 그렇게 많이 다녔지만, 내몽고(內蒙古)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었는데 19971내몽고로 가자는 연락을 받고 사전 계획도 안 들어 보고 그냥 따라나섰습니다.

중국 베이징을 거쳐 내몽고의 성도(省都)인 호화호특(呼和浩特)에 밤중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베이징에서 일찍 출발하기로 했는데 활주로를 벗어나기 직전에 비행기가 멈추더니 안내 방송도 없이 무려 1시간 이상을 기다렸답니다.

왜 안 가냐고 묻는 사람도 없고, 답답하게 한참을 기다리는데 지프 한 대가 오더니 군복 입은 사람들이 타서야 출발합니다. 나중에 이들을 자세히 보니 우리가 비행기 탑승하려고 나올 때 사무실에서 포커를 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옆에 앉은 내몽고에서 사업한다는 한 사람이 저 사람들은 내몽고에서 주요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라 그렇다아마 고위 공산당원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내몽고 여행에서는 몽골대학 박병욱 선생의 지인이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답니다. 그는 내몽고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랍니다.

원나라 멸망 후 중국 지배 하에 있던 몽골은 옛 소련(蘇聯)의 지원으로 내몽고와 몽골인민공화국으로 쪼개졌습니다. 내몽고는 중국의 자치지역이 돼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인 셈입니다. 오랜 세월 중국의 통치로 지금 거의 한족화(漢族化)되고 있어 몽골과 서로 정통성을 놓고 학자들 사이에선 국제 몽골학회가 열릴 때마다 티격태격 의견 대립이 많다고 합니다.

중국 어느 곳을 가나 사람이 북적이는데 내몽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에 일어났으나 밖이 컴컴합니다. 분명 시간 상으로는 날이 밝아야 하는데 이상하다 싶어 호텔 옥상을 올랐더니 날은 훤히 밝았으나 아래는 환경오염으로 도시 전체가 시커먼 매연으로 덮여 있습니다. 순간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내몽고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포두(包頭)가 있는데 그곳에 있는 동양 최대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매연이 날아와 아침마다 도시를 뒤덮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베이징도 연탄 매연으로 도시가 뿌연 먼지로 뒤덮였을 정도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서둘러 칭기즈칸 사당이 있다는 오르도스 초원으로 향했답니다.

도시를 벗어나 초원지대에 들어서자 칼바람이 몰아칩니다. 눈은 안 내리지만 얼마나 추운지 머릿속까지 얼얼합니다. 왜 몽골 사람들이 두꺼운 털모자를 쓰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사당 안에 있는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벽화
사당 안에 있는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벽화

인적 드문 초원을 한참 달린 끝에 전통적인 몽골풍 건물이 서 있는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이 건물이 바로 칭기즈칸 사당이랍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 사람 흔적도 없이 썰렁합니다. 내몽고에서는 이 일대가 칭기즈칸의 묘가 있는 곳이라 주장한답니다. 문이 잠겨있어 사당 안을 자세히 다 볼 수는 없어 열린 부분만 보니 한 때 세계를 점령했던 칸의 위용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고 벽화와 비석, 약간의 유물만 걸려 있어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꽤 많은 유물이 전시돼 있겠지하고 기대했는데.

넓게 펼쳐진 오르도스 초원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저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초원에서 나는 지금 무얼 하는 것일까. 이렇게 허무한 세월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이제 나 자신을 정리해 나가야 할 때인데.’

오르도스 초원은 본래 기름진 땅으로 농산물이 풍부하게 자라고 지하자원도 많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리한 개간 등으로 황폐해져 이제는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변했다고 한다.
오르도스 초원은 본래 기름진 땅으로 농산물이 풍부하게 자라고 지하자원도 많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무리한 개간 등으로 황폐해져 이제는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변했다고 한다.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정말 순간적이지만 지금 껏 어느 여행에서도 느껴보지 못 한 감정이었답니다. 그 때 일행 중 한 명인 강영봉 교수가 옆으로 다가오자 내 심정을 얘기했습니다. 그는 마치 내 마음을 알고나 있었듯이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이제 짐을 내려 놓을 때도 된 것 아니냐고 합니다. 그의 말을 듣자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새로운 진로를 결정했다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 다음 목적지인 오당소(五當召)로 향하는 내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답니다.

드넓은 오르도스 초원, 동행한 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오르도스 초원지대는 가장 기름진 땅으로 농산물이 풍부하게 자랄 뿐 아니라 곳곳에 지하자원도 많은 지역이었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초원을 개간해 농지 또는 과수원을 만들어 놓았고 또 어떤 지역은 피복 식생인 초지가 황폐해져 벌건 암반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농지 확장을 위한 무리한 개간과 더불어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흙이 날려와 이제는 농사도 지을 수 없는 황폐한 지대가 됐답니다. 무분별한 개발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현장입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들으며 오다 보니 멀리 오당소가 보입니다. 오당소는 내몽고 최대의 라마사원으로 멀리서 바라보니 산 능선에 사원이 겹겹이 세워져 있는 모습입니다. 대부분 사원은 사람이 북적이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 그림자도 볼 수가 없습니다. 내려가는 길목에는 만리장성의 한 부분이었다는 토성이 허물어지다 만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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