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블루
까미노 블루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7.1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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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전 제주일보 논설고문·논설위원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됐건만 산티아고는 여전히 내 머릿속에 머물고 있다.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다. 이럴 정도면 내 스스로가 봐도 중병이다. 이러다가 이 병을 고치지 못 하고 이 병으로 평생 앓다가 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산티아고 순례 때와 연관시켜 생각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밥을 먹더라도 산티아고에서는 작은 컵라면 하나만 있으면 성찬이었고, 맛없는 바게트 빵 속에 값싼 치즈와 햄을 욱여넣어서 먹으면 최고였지 하는 식이다.

인생이 뭐 별건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수용소 같은 알베르게 숙소에 비하면 내 집의 침대는 황제급이지 라고 한다든가, 짧은 거리임에도 차를 끌고 가게 되는 경우라도 있을라치면 호사라고 여기는 일들이다.

배낭 꾸리는 일조차 쉽지 않았던 좁은 공간에서 낯선 이의 잠꼬대와 코골이마저 그리워지니 가히 중병은 중병이다 싶다. 그러다가도 아무 것도 하기 싫고 그저 멍하니 밖을 바라볼 때가 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이 병은 더욱 도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입었던 노란 비옷을 걸치고 하염없이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는 그렇게 싫던 비가 지금은 가장 많이 생각나는 추억이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순례 전 짐을 덜기 위해 배낭을 여닫았던 게 수 차례였다. 누구나 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나름 줄이고 줄여, 품목과 물품을 최대한 덜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건만 그 짐들이 내 순례길을 잡는 발목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불과 며칠 뒤였다. 먹는 양까지 최소화했다. 아주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면 빼서 배낭 속의 무게를 덜었다. 나름 살기 위한 생존방식을 터득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버리지 못 하면 목적지에 갈 수 없다는 절박감도 작용했다.

까미노 블루. 산티아고 순례 후에도 항상 마음 속에 까미노(산티아고 순례길을 지칭하는 스페인어)에 머물러 있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설마 그럴까 하지만 6년 동안이나 까미노 블루를 앓다가 다시 산티아고 순례에 나선 이들도 있다. 심지어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뒤에 스페인의 땅끝 마을 피스테라와 묵시아를 여행하다가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간 사례도 있다고 한다. 산티아고의 전설처럼 들리지만 전설이 아니다.

산티아고는 순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한참을 지나도 어제 걸은 것처럼 선명하다. 그게 병이다. 그래서 산티아고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다녀온 사람은 없다고 한다.

도대체 이 병은 왜 생기는 걸까. 왜 많은 사람이 까미노 블루를 앓을까.

산티아고의 순례는 완주를 목적으로 하는 트레킹이나 하이킹하고 다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는 가톨릭의 3대 성지 가운데 하나로서, 성 야곱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을 목적지로 하는 순례이다. 매일 평균 257시간 이상, 그리고 30여 일을 걷는 과정에서 누구나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산티아고 까미노 길에 서면 누구건 그가 살아왔던 길과 앞으로 살아갈 길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만의 소중한 성찰의 기회를 옳게 만나는 것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자갈길을 온종일 걷는가 하면 어느 날은 산길과 숲길, 그리고 가파른 산을 만나게 된다. 발에는 물집이 생기고 무릎에서는 자꾸 통증 신호를 보내온다. 어떤 날에는 눈보라와 폭우를 만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빨리 걷든 천천히 걷든 목적은 같다.

산티아고 까미노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 너무 흡사하다. 그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자들은 까미노 블루라는 중병을 선물로 안고 오는지 모르겠다.

이 장마철에 내 까미노 블루의 중병은 더욱 도질 것이다. 그럼에도 산티아고 까미노 위에 다시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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