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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인식하는 삶
죽음을 인식하는 삶
  • 제주일보
  • 승인 2019.07.09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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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보험아줌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전에 55살까지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이제 낼모레 55세입니다.”

아직도 오래 살 자신이 없으세요?”

마흔이 되든 해 망막 혈관이 막혀서 왼쪽 눈을 실명하게 된 이후로 필자는 더 이상 보험사들로부터 새로운 고객이 될 수 없었다.

오래 살 자신이 없었던 필자는 남은 가족을 위해 사무실에 자주 오던 보험아줌마를 붙들고 상담한 끝에 퇴직 전 나이에 죽거나 1급 장애를 받아야만 보상이 되는 종신보험에 가입했었다.

이날 필자는 삶의 목표를 75세로 다시 조정하며 종신보험을 갱신했다. 55살까지만 살 수 있다면 했던 필자는 앞으로의 삶이 그야말로 덤인 것으로 여겨져 많이 행복했다.

필자가 이른 나이에 죽음을 자각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는 프란츠 카프가의 말대로 삶의 매 순간순간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필자는 단연코 죽음을 자각하며 살아온 지난 십여 년의 삶이 일반적인 삶보다 더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매일같이 느끼며 살았고 화북윈드오케스트라는 내 삶의 보람이 됐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을 잊으려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필자 또한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으로부터 위안을 받기까지 많은 성찰이 필요했다.

왜 우리는 죽어야만 할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과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철학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성찰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변화하는 지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선조의 경험이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제외하고는 의식과 육체를 온전히 버리지 않고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개체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나와 다르지만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는 아들들과 딸들에게서 또 다른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와 또 다른 나를 다섯이나 만들어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영혼은 존재하는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믿을 수 없는 것일까? 세상의 시작, 우주의 처음에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에너지를 가진 작은 공간이 거대한 폭발을 통해 지금의 우주가 됐다는 빅뱅 이론은 과연 창조론에 모순되는 것일까?

물질과 에너지의 경계, 물질과 비물질의 영역이 점차 밝혀지고 있지만 비물질의 영역은 아직도 미지의 세계다. 필자는 과학 그 자체 세상 만물의 이치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라 여긴다.

하느님의 자녀로, 세상 만물의 작은 부속으로 그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본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셀리 케이건은 죽음 뒤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이미 죽고 나면 죽음을 인식할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의 존재 유무를 떠나 어쨌든 지금의 육체와 정체성을 가진 나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거스를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다만 신의 섭리 안에서 또 다른 내가 세상을 이어갈 뿐이다.

톨스토이는 죽음을 망각한 생활은 동물에 가깝고,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옴을 인식하는 자는 신에 가깝다고 했다.

죽음을 인식하게 되면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은 철학하는 삶을 살 게 됐다는 것이다.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배우고 익히며 사색하는 즐거움이 필자를 더없이 행복하게 해준다.

수 억겁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 하루 어떻게 살 것인가? 항상 자문하자.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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