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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벙커 미술관을 가다
빛의 벙커 미술관을 가다
  • 제주일보
  • 승인 2019.07.0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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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동심초 회원들이 환경정화에 동참하기 위하여 성산포 광치기 해변을 찾았다.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청정 제주를 지키기 위한 봉사를 마치고 문화 산책의 일환으로 빛의 벙커인 미술관을 관람하였다. 벙커 관람을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이 있기에 바로 옆 건물인 커피 박물관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가 입장했다.

이곳은 1990년 해저 광케이블 관리를 위해 지하에 비밀벙커를 만들고 국가 통신시설을 관리해 오던 곳이다. 관리도 군에서 했기 때문에 극비리로 취급되어 왔다. 해저 광케이블이 수명이 다하자 민간에 관리권이 넘어간 뒤 오랜 시간 방치해오다 비밀 공간을 빛과 음악으로 채워진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자태로 벽면을 수놓고 있는 금빛으로 장식된 생명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수십 대의 빔 프로젝터와 스피커에 둘러싸여 고풍스런 건물들이 형형색색 빛을 발한다.

빛과 색채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 오스트리아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빛의 벙커에 들어섰다. 자유분방한 클림트의 성향답게 작품들이 하나같이 화려하면서도 관능적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꽃그림, 천정과 바닥이 온통 그림과 빛으로 채웠다. 성산포에 위치한 900의 면적과 천장 5.5m에 콘크리트로 된 벙커, 폐기된 공간을 재활용하여 음악과 영상으로 만들어진 미디어 아트 전시관이다.

예술(art)과 음악(music)에 빠져드는 순간, 황홀하리만큼 온 몸에서 전율이 흐른다. 몸 속의 세포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하다. 그림과 내가 하나가 된 듯 자유롭게 그림 속 세상을 마음껏 활보한다. 현란하게 펼쳐지는 빛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나를 매혹시킨다. 꽃밭을 거니는 상상도 하고 작품 속의 여인과 대화도 나눈다. 암흑 속의 빛이 재탄생되는 순간이다. 화면을 비추는 대형 무대는 세계 거장의 명화들이 차례로 빛을 발한다. 그림과 함께 바그너의 오페라와 베토벤 교향곡이 귓전을 감싼다. 다섯 가지 감각을 의인화한 여인들의 모습, 고풍스러운 오스트리아 빈의 건물들이 알록달록 빛을 내며 조화롭게 움직인다.

범상치 않게 내 눈을 사로잡은 작품이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안고 있는 클림트의 포옹이다. 인물이 현란한 무늬 속에 파묻혀 있다. 아마도 여인의 키가 클림트보다 컸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원작인 키스와 함께 형형색색 다채로운 색채들이 빛의 향연에 따라 곡예하며 펼쳐진다. 온몸을 감싸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디지털 영상으로 21세기의 신기술을 체험할 수 있었다.

미술을 음악처럼, 음악을 미술처럼 감상할 수 있는 곳,

그림을 통하여 클림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고독감,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불멸의 사랑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한 클림트, 아픈 상처를 지닌 작가의 절규를 느낄 수 있었다.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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