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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희생 ‘조작간첩’ 위한 기억 공간 문 열다
공권력 희생 ‘조작간첩’ 위한 기억 공간 문 열다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9.06.23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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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지금여기에’ 22일 ‘수상한집’ 개관
간첩 누명 도민 강광보씨 자택 활용해 조성
“분단 시대의 국가폭력 이야기 전하는 공간”
국가 공권력에 의해 간첩으로 낙인찍힌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 ‘수상한집’이 22일 개관했다. 고경호 기자
국가 공권력에 의해 간첩으로 낙인찍힌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 ‘수상한집’이 22일 개관했다. 고경호 기자

“나온 다음에 나 잡아간 경찰 찾아갔지. ‘시국이 그럴 때라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사과하대? 전두환 대통령 때 1계급 특진·3000만원 보상. 그거에 눈이 어두운 거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수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힌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 문을 열었다.

22일 오후 5시 제주시 도련3길 14-4 ‘수상한집’. 철골 구조물로 세워진 세련된 신축 건물에 들어서자 낡은 집 한 채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름처럼 수상한 ‘집 속의 집’ 구조였다.

낡은 집의 주인은 제주4·3 당시 일본으로 피신한 아버지를 만나러 1960년대 초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간첩으로 낙인찍힌 강광보씨다.

국가폭력으로 희생당한 피해자와 가족, 인권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시민단체 ‘지금여기에’는 강씨의 집과 땅, 재심 무죄 판결 후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에 시민들의 후원금을 더해 수상한집을 조성했다.

수상한집은 조작간첩 등 국가 공권력 피해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문을 연 기억 공간이다.

이를 기획한 변상철 지금여기에 사무국장은 개관식에서 “수상한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에 수상한 집이다. 그러나 비정상과 비상식이 팽배한 이 시대가 정말 수상하다”며 “제주도민들은 4·3의 비극을 겪고도 연좌제를 통해 ‘빨갱이’로 몰려 조작간첩이 됐다. 이들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수상한집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강광보씨는 “수상한집은 한 인간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다. 과거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이 쉴 수 있는, 또 조작간첩이라는 비극을 많은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수상한 사람이 사는 수상한집이지만 이곳을 통해 알리려는 메시지는 명백하고 확실했다.

‘고통스러웠어요. 한꺼번에 고통 받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도피자 가족이라고, 빨갱이 가족이라고 소리 없이 업신 받는 그 것이…’, ‘재판 당시 나는 빨갱이도 아니고 간첩도 아니라고 한 마디 밖에 안 했어요’. 수상한집 1층 ‘지금 이 시간, 지금 이 곳, 지금 여기에’에 전시된 조작간첩 양정옥·김평강 부부, 오재선씨, 강희철씨의 인터뷰와 사진·영상자료들은 이들의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날 개관식에는 삼척간첩사건, 울릉도간첩단 사건, 맹인간첩단 사건 등 육지에서 발생한 조작간첩 피해자들도 자리했다. 이들은 조작간첩의 비극을 담은 판소리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변 사무국장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조작간첩들을 위한 아지트인 수상한집이 만들어졌다. 제주도민들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이곳을 운영해나가겠다”며 “수상한집은 제주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육지로 나아가 통일된 한국, 통일된 조국에서 분단의 시대에 벌어진 국가폭력의 이야기를 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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