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미국 유학 시절 봄학기와 계절학기 사이 일주일간의 공백이 생겨 갑작스러운 영국 런던 여행을 무작정 떠난 적이 있다. 물론 겁도 없이 혼자서 그야말로 느닷없는 여행이었다.
호텔관광경영학 대학원 입학한 뒤 첫 학기를 마치고 서비스에 대한 아무런 개념이 없었던 나로서는 큰 깨달음을 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그야말로 인생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하나하나 여기에 여행 이야기를 다 할 순 없지만 런던과 파리 여행의 많은 경험과 좋은 추억을 담고 다시 학교가 있는 마이애미로 돌아가기 위해 이른 새벽에 히스로공항행 지하철 표를 사려고 런던 지하철 매표소를 찾았을 때 겪은 일이다. 중년의 매표소 여직원이 새벽의 피곤함을 그대로 드러낸 얼굴로 나에게 공항 가는 티켓을 건네었다.
나는 계획 없이 온 여행이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던 학생시절이라 혹시 할인 티켓을 현장에서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 순간 그 매표소 여직원은 짜증을 넘어서 언성을 높여 나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지금 그 직원이 무슨 말은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억울한 마음을 뒤로한 채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그 상황을 쭉 지켜보고 있던 안전요원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대신 사과하겠다며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이야기 끝에 혹시 여기 매니저 있냐고 물으니 그 친구가 가리킨 연세 지긋한 분이 내 앞을 지나가시길래 다가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더니 그분이 하신 말씀은 또 한 번 내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지하철 따위에서 서비스를 기대하냐?”며 퉁명스럽게 던지는 말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답했다. “전 서비스가 아니라 친절을 바랐을 뿐입니다. 너무 좋은 추억을 담은 런던 여행의 기억을 저 여자분이 다 망쳤어요!”
울컥하며 나도 모르게 서러웠는지 구석에서 약간의 눈물과 함께 새겨지는 다짐이 있었다. “다시는 나에게 오는 고객에게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 없이 최대한 진심으로 대하자”라고 결심하였다. 그 여행 이후 박사과정에서 서비스 마케팅에 관련된 공부를 하였고 서비스론에 관련된 강의를 학생들에게 하며 몇 년이 지나갔다.
그러다, 난 제주도에 잡은 직장으로 입도민이 되어 제주 생활을 누리던 어느 날, 제주시의 오일장을 구경하다 시장 내 어묵과 튀김을 파는 유명한 맛집을 발견해서 맛있게 즐기고 있을 때였다. 바로 옆에 관광객으로 보이시는 분이 튀김 포장주문을 하면서 간장도 함께 달라고 했다. 대뜸 이 주인아주머니는 “몇 개 살 건데요?” 되물었다. 내가 느끼기엔 그 말에 뉘앙스는 많이 사면 간장 주고 적게 사면 안주겠다는 뜻으로 들렸고, 그 관광객도 내가 느낀 어조를 그대로 느꼈는지 상당히 어두워진 얼굴로 몇 개라고 이야기하자, 옆에 있는 종이컵을 가리키며 알아서 간장을 담아가라고 이야기하셨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내가 먹고 있던 어묵 맛이 뚝 떨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것은 불친절한 걸까? 서비스의 부재인가?
제주도에 살면서 누리는 깨끗한 공기와 아름다운 경관 같은 장점 너머 상대적으로 느끼게 되는 단점 중에 비싼 물가보다 더 무서운 게 사실 ‘불친절’이다.
친절(Kindness)의 사전적 정의는 동정적이고 도와주려는 성격 (sympathetic or helpful nature)이다. 서비스(Service)의 정의는 serve(섬기다)의 명사형으로 사전 첫 번째 뜻은 누군가를 도와주려는 행동이고 두 번째 뜻은 유형의 상품과 상반되는 무형의 상품으로 특히 관광산업의 대표적인 상품이 서비스이다. 서비스는 유형의 상품처럼 손에 쥐고 돌아서는 게 아니라 감동이나 추억으로 가슴과 머리에 담아가는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졸업 이후 일했던 MGM Grand 호텔은 직원을 직원이라 부르지 않고 ‘Cast Member’라고 호칭한다. ‘손님은 관객이고 직원은 손님을 감동시켜야 할 공연자’라는 의미이다.
내가 지불하는 지하철 푯값에 나의 질문에 대답할 만한 가치, 시장의 그 관광객이 지불한 튀김값에는 간장 서비스가 포함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들은 그렇게 손님들에게 친절까지는 아니어도 그들의 추억에 생채기를 내었나?
제주도는 도청 차원의 개인사업자들에게 서비스교육도 하고 있다고 한다. 서비스 교육이 친절하게 만들 수 있을까? 친절함은 교육이 될까? 서비스마인드는 학습이 될까?
사실, 런던 지하철 매표소에서 동료직원으로부터 조그마한 동양 여자가 봉변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자신의 잘못도 아닌 것을 사과하고 위로까지 해 주던 그 친절했던 안전요원도 그 불쾌하게 기억되는 런던 여행의 그 장소에 있었다.
하지만, 부족한 새벽잠 때문에 나에게 잔뜩 짜증 부린 그 여직원의 불친절함이 새긴 마음의 생채기만 또렷하고 그 안전요원의 친절은 지금 이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인지하지 못했었다. 그 안전요원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친절은 교육이 아닌 천성에 가까우리라.
개인사업자들이 지금 받는 서비스교육은 상품화된 서비스를 팔면서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단골손님이 되어 더 많은 수익과 이익을 낸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하는 훈련과 교육일 뿐이라는 그런 얄팍한 철학이 아니다.
동정적이고 도와주려는 마음, 감동시키려는 노력, 섬기는 마음 등 더욱더 깊은 뜻이 받들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박사과정에서 무수히 접했던 그 어떤 ‘서비스의 정의’보다 나의 어머니께서 해 주셨던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한다.
“부모님, 친구, 직장동료, 내 주위 분들을 섬기듯 대하는 자세…. 그러고 보면 인생에 있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서비스는 다 적용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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