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지켜주지 못 한 아픈 역사
누구도 지켜주지 못 한 아픈 역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6.1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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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다희(노형중) 명예기자 - 한권의 책- ‘덕혜옹주’를 읽고 나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삶 그려
어린 나이에 겪은 시련 안타까워
교훈 되새기며 새로운 역사 써내야

여러분은 덕혜옹주를 아시나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덕혜옹주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고 다시 한 번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책을 읽다보니 그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힘이 없으면 한 명의 옹주를 지켜내지 못 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덕혜옹주의 아버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종이고 옹주가 태어날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일본제국은 고종을 왕위에서 내려오게 하였고 힘이 없던 고종은 덕혜옹주를 호적에 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덕혜옹주가 무럭무럭 커가고 있을 때쯤 1919년 고종이 갑작스럽게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라던 어린 옹주에게는 너무나도 커다란 시련이었습니다.

일제는 고종의 죽음과 함께 조선 사람들이 왕족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을 막기 위해 덕혜옹주를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보내게 됩니다. 그 때 나이가 14살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가서 유학생활을 하게 된 옹주는 계속 적응하지 못하고 매일매일 조선을 그리워하며 조선 땅을 밟을 생각만 하며 지냅니다. 하지만 오빠의 죽음과 어머니의 죽음까지 차례로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이 조선으로 돌아가서 가장 보고 싶었던 오빠와 엄마를 죽음으로 맞이한 후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신경쇠약증까지 나타났고 나중에는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였다고 합니다.

그 뒤로 옹주가 결혼을 해야 할 나이라고 생각한 일제는 옹주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소 다케유키라는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시키게 됩니다.

결혼 후 딸 한명을 낳는데 그 아이의 이름은 두 개였습니다. 마사에와 정혜. 일본인인 다케유키는 딸을 마사에라고 불렀고 덕혜옹주는 정혜라고 불렀습니다.

덕혜옹주는 낯선 땅에서 자신의 유일한 핏줄이라고 생각한 정혜를 귀하게 키우고 있었지만 딸을 낳고 정신분열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꽃 같은 나이에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청춘을 다 보내고 몇 십 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조선의 땅을 밟은 비운의 옹주.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고도 왕족의 신분으로 꿈에 그리던 땅을 밟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조선의 다른 옹주들과는 다르게 순탄한 삶을 살 수 없었던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옹주가 강제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나이는 지금 나와 같은 14살입니다. 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금 부모님과 떨어져 다른 나라로 끌려가서 혼자 생활해야 한다면 고향이 얼마나 그립고 부모님과 가족들, 친구들이 얼마나 많이 보고 싶을지 생명줄이 끊어진 것처럼 쓸쓸하고 무섭고 견디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수행평가 준비로 다시 한 번 읽게 되었지만 요즘 많은 학생들이 역사 공부를 단순히 시험을 보기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책보다는 빠른 시간에 많이 배울 수 있는 인터넷 강의를 더 많이 찾는 것 같습니다.

시험을 위한 역사공부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을 볼 수 있고 아픈 역사를 뒤돌아 볼 수 있고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역사책들을 통해 더 많은 토론과 비판을 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데 힘을 내야 할 것입니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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