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다
러일전쟁,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06.1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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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고문헌 박사·논설위원

지정학으로 보는 한반도-한반도 분단 극복을 위하여(4)

 

한반도에서 청의 영향력을 물리친 일본은 내친김에 요동반도까지 진출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간섭으로 요동반도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요동반도는 일본이나 러시아 모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지역이다. 수도 베이징과 가깝고 뤼순이라는 좋은 항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주라는 넓은 벌판을 경영할 수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요동지역을 차지한다면 한반도와 만주는 물론 중국 본토까지 노릴 수 있었다.

러일전쟁의 주 무대는 요동반도였다. 뤼순항과 봉천에서 수십만의 희생자를 내며 국가의 존망을 건 싸움을 치렀다. 간신히 일본이 이기긴 했지만, 양쪽 모두 전쟁이 끝났을 땐 방전 직전 상태였다.

러시아는 극동지역이 모스크바로부터 철로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타국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1885년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하면서 러시아와의 일전을 불사하는 것을 보고, 극동지역의 개발과 인구 이주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1891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되는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에 강력한 위협을 느낀 것은 일본이었다. 한반도와 연해주, 사할린과 일본열도로 감싸인 바다가 동해이다. 이곳에 러시아가 거점 항구를 마련한다면 일본은 곧장 사정권 안에 들게 된다. 만에 하나 러시아가 한반도로 남하하여 원산 영흥만에 극동함대를 배치한다면 일본의 운명은 촌각을 다투게 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러시아는 1890년대 후반 청으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시베리아철도의 만주 통과를 허락받았다. 철도의 최단 거리를 확보한 것일 뿐만 아니라 만주 지역 진출이라는 꿈을 이룰 기회를 확보한 것이다. 그리고 철도 중간 거점인 하얼빈에서 요동반도의 끝 다롄까지 이어지는 남만주철도 부설권을 획득했다. 더해 뤼순과 다롄을 25년간 자기 영토처럼 사용할 수 있는 조차권을 얻었다. 러시아 남진의 꿈인 뤼순항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러시아의 다음 목표가 자기들이라고 기겁했다. 당시 객관적 전력은 일본이 러시아에 상대가 안 되었다. 일본의 가장 큰 걱정은 러시아가 한반도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자기들이 청과 싸워 조선을 청의 영향력으로부터 분리해 놓았는데, 러시아가 조선을 차지한다면 죽 쒀서 개 주는 꼴일 뿐만 아니라 자국의 안보에 심대한 위협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일본은 처음에는 러시아와 외교적 해결을 추진했다. 전쟁에는 아직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의 주장은 자기들이 한반도를 차지할 테니 러시아는 만주 철도권을 가져라, 다만 만주 전체 점령은 안 된다, 만주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여러 나라가 무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이를 만한교환론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만주에 대해서 일본은 낄 자격이 없다, 러시아의 한반도 해협 자유 항해를 허용하고 한반도 39도선 이북은 중립화하자, 그리고 일본은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이용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즉 요동반도는 이미 러시아가 차지했으니 이에 대해 일본은 왈가왈부하지 말고, 충돌 방지를 위해 평양-원산 라인인 39도선 이북 지역을 중립화하여 완충지대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대한해협 자유 항해 조건은 일본 안보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조항이었다. 이는 일본이 절대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길은 하나, 전쟁뿐이었다. 그래서 19042월 전쟁이 시작된다.

이에 앞서 1900년 중국에서 반외세 운동단체인 의화단이 들고 일어난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는 헤이룽강 유역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1902년 영국은 러시아가 육지와 바다 양쪽에서 중국을 압박하게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1월 영일동맹을 체결한다. 미국 역시 영국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은 사실 한반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청일전쟁으로 한반도의 운명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만 중국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가 만주를 독차지하는 것을 반대했다. 만주는 면직물 수출 시장으로서뿐만 아니라 콩 산지로서도 경제적 가치가 컸다.

그렇다면 독일과 프랑스는 왜 러시아를 지지했을까. 프랑스는 이미 러시아의 만주철도 부설 비용을 지원하고 있었다. 이를 회수하기 위해서는 러시아가 이기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독일은 유럽에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러시아가 유럽 쪽으로 팽창하는 것은 독일에는 커다란 위협이었다. 따라서 러시아의 관심을 동쪽으로 돌리는 것이 자기들에게는 이익이었던 것이다.

결국 19059월 미국의 중재로 미국 포츠머스에서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 제2조는 다음과 같다. “러시아제국 정부는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군사 및 경제적인 탁월한 이익을 갖는 것을 승인한다.” 이미 이때 한반도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미국, 영국을 포함한 모든 서구 열강들이 한반도는 일본 것이라고 승인했던 것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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