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기억과 악취
베네치아의 기억과 악취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06.0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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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는 꼭 가보고 싶었던 도시였다. 마르코 폴로의 고향. 중세와 르네상스의 기억, 십자군과 카사노바의 욕망은 아직도 남아있을까. 동서를 잇는 중계 무역으로 그야말로 떼돈을 벌었던 이 도시를 배경으로 쓴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찾아갔다.

베네치아는 당대의 화가와 건축가들이 피렌체와 함께 르네상스를 꽃피운 예술의 도시이자, 모두 118개 섬과 150개 운하로 이뤄진 물의 도시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다 남은 물길이 운하로 이어진다. 세계 어느 곳보다 매력적이었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 주민의 일상적 삶을 만나기 어렵다는 흠도 컸다.

하지만 내가 베네치아를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곤돌라를 타고 작은 운하를 다닐 때 도시 곳곳에서 풍기는 분변 냄새는 베네치아에 대한 아름다운 연상을 앗아가 버리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오감(五感) 중 후각이 가장 예민하다. 그래서인지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무려 2000~4000가지라고 한다.

후각의 특징은 청각과 함께 소위 상태 의존적 기억’(state dependent memory)과 연관이 크다는 점이다. 어떤 냄새를 맡거나 음악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전에 그 것을 경험했던 상황이 연상되는 것이 상태 의존적 기억이다.

맛있는 음식 냄새만 맡아도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주제곡()을 자꾸 듣고 싶어지는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향기 마케팅은 이런 후각의 특징을 잘 활용한다. 향기 마케팅의 요체는 매장이나 제품에서 고객들의 좋은 기억과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냄새가 나도록 해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베네치아 역시 향기 마케팅을 모를까. 하지만 하수처리 문제가 이 도시를 죽이고 있었다.

 

악취를 계속해서 맡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해져 짜증·히스테리·불면증을 일으킨다. 생리적으로도 혈압 상승, 호르몬 분비 변화에 따른 생식계 이상, 두통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인다는 게 통설이다. 향수가 악취 때문에 생겼거니와 실제 18세기 중반 유럽 도시는 성당에 매장한 시체 썩는 냄새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제주 곳곳에서도 악취 때문에 난리다. 양돈 악취 등은 물론 하수·분뇨·쓰레기 냄새를 참다못한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한다. 어떤 곳에선 악취 때문에 비위가 상하는 건 물론 후각이 무뎌질 정도다.

악취를 황화수소, 메르캅탄류, 아민류 및 기타 자극성 있는 기체 상 물질이 사람의 후각에 작용해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는 냄새라고 정의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각종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지만 냄새 공해는 심각하다.

 

도시는 사막이라는 영국 속담처럼 제주는 도시화하면서 갈수록 황량해지는 느낌이다. 도시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오히려 주민이 도시로부터 소외당하는 꼴이 돼 버렸다.

하늘은 잿빛이고, 공기는 메말라 있고, 거리는 번잡하고, 이웃은 냉담하고, 사람들에게서는 도대체 정()을 느끼기가 어렵다.

환경 친화 정책을 펴고, 교통난에 신경을 쓰고, 일자리를 늘리고, 교육시설을 확충하고, 주민의 라이프 스타일을 개선 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베네치아처럼 가는 곳마다 각종 악취가 풍긴다는 점이다.

도시는 어쩔 수 없이 양면성을 갖는다. 관광객이 늘고 인구가 많아지면 환경이 나빠지긴 해도 경제 사회적 편리함도 누린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런 양면성을 잘 조화시키면서 향기 마케팅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kangm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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